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슬로 플레이’에 대한 강력한 벌타 규정을 도입하며 ‘거북이 골퍼’ 퇴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슬로 플레이를 ‘골프의 적’으로 규정했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비롯한 각국 투어, 국내 골프계에도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LPGA투어는 주어진 시간을 6초만 초과해도 벌타를 주는 새로운 규정을 3월 27일(이하 현지시각) 열리는 포드 챔피언십부터 시행한다. LPGA투어는 2월 13일 “최근 마련한 새 경기 속도(Pace of play) 규정은 LPGA투어 위상과 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 규정은 샷을 할 때 주어진 시간(40초 규정)을 1~5초 초과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6~15초 초과하면 1벌타를 매긴다. 16초를 넘기면 2벌타를 주게 된다. 현행 규정은 30초 초과까지 벌금, 31초를 초과해야 2벌타를 부과했다. 그 시작 기준은 자기 순서가 왔을 때 방해받지 않고 경기할 수 있는 시점으로 본다. 같은 조 선수가 샷이 끝나길 기다리는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홀에서 처음 티샷을 하는 선수에게는 40초에 더해 10초씩 더 주던 것도 티샷으로 바로 그린을 공략하는 파 3홀과 원온이 가능한 파 4홀을 제외하고는 없앴다.
이 같은 강력한 조치는 정상급 선수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2024년 여자 골프 세계 1위 넬리 코르다(미국)는 LPGA투어 시즌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챔피언십을 앞두고 “슬로 플레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켜보는 팬에게도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 6시간 가까이 걸리는 중계를 보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퍼팅하기 위해 2~3분 걸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찰리 헐(잉글랜드)은 삼진 아웃 제도를 도입하자고도 했다. “비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슬로 플레이로 세 번 벌타를 받으면 즉시 투어 카드를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의 대표적 골프 규칙 전문가인 최진하(전 KLPGA투어 경기위원장) 박사와 LPGA투어의 혁명적인 경기 속도 규칙 변경에 대해 알아본다.
그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킹스칼리지런던 대학원을 수료한 정치학도로 출발해 출판 업계에서 골프의 역사와 규칙에 흥미를 느껴 골프 박사가 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 USGA(미국골프협회)의 레퍼리 스쿨을 모두 이수하고 두 기관으로부터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40초 규정은 골퍼가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부터 적용되는가.
“어드레스 같은 골퍼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순서가 됐을 때 어떤 방해나 간섭 없이 플레이할 수 있는 상태가 된 후부터 40초 안에 스트로크해야 한다. 위원회에서 속도 지침을 강제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는 경고와 계시 방법뿐이다. 기준 시간 40초는 목표 지점까지 거리를 결정하고, 클럽을 선택하고, 바람 상태를 판단하는 시간 등을 포함한다. 퍼팅그린에서는 볼 마크(볼 자국) 같은 손상을 수리하고 루스 임페디먼트를 제거하고 레퍼리가 칠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계시가 시작된다. 볼을 리플레이스하기 전에 계시가 시작될 수도 있다. 자기 차례가 됐는데도 어드레스 하지 않거나 골프 클럽을 잡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선수의 샷 시간을 파악할 수 있나.
“넬리 코르다 등 선수는 첫 조부터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위원을 모든 팀에 배정하는 건 인력과 비용, 교육 문제 등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수의 경기 흐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그룹과 동행하며 여러 샷 데이터를 수집하는 스코어 기록원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KLPGA도 프로의 퍼포먼스 데이터나 샷 추적, 플레이 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서 뒤처지는 그룹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각 투어는 플레이 속도를 모니터링하는 로버 레퍼리를 운용하고 있다. 플레이 속도가 뒤처지는 그룹이 있는지 파악하고, 문제가 있는 곳에 경기위원이 시간 측정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인력과 시스템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경기 속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각 투어에서 집행하는 경기 속도 정책(pace of play policy)의 기반은 라운드의 경기 시간을 정하여 경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웃 오브 포지션(out of position)’을 규정하는 것이다. 3인 1조를 기준으로 한 라운드의 경기 시간은 4시간 30분 내외다. PGA투어는 3인 1조일 때 파 3홀 11분, 파 4홀 14분, 파 5홀 18분을 기준으로 속도 표를 작성한다. 11분×파 3홀 4개, 14분×10개 파 4홀, 18×4개 파 5홀을 계산하면 256분(4시간 16분)이다. 9홀 마치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홀 난도에 따른 가감, 그린에서 다음 홀로이동 시간 등을 고려하면 4시간 30분이 산출된다. 우리나라처럼 산악 코스라면 이동 시간이 더 걸리니 4시간 40분 정도가 적정한 경기 시간일 수 있다.”
6초만 넘겨도 1벌타, 16초를 넘기면 2벌타다. 반발은 없을까.
“이번 조치는 코르다나 헐 같은 선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집행에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슬로 플레이가 기존 골프 팬을 떠나게 할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골프를 지루한 스포츠라며 꺼리는 최대 원인이라는 지적에는 전 세계 투어의 공감대가 있다. 벌금보다는 벌타를 강화하는 방향도 바람직해 보인다. 상금이 늘면서 벌금은 억제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성적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벌타가 억제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첫 번째 티샷을 하는 선수에게 10초를 더 주던 것도 대폭 축소했다.
“LPGA에서 파 4홀과 파 5홀에서 티샷하는 첫 번째 선수에게 10초를 추가하여 50초를 부여하는 조항을 없앤 이유는 파 4홀과 파 5홀은 첫 번째 친다고 해도 파 3홀 티샷처럼 고려 요소가 많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경기 시간 단축 효과와 함께 PGA투어가 이미 이렇게 하고 있어 보조를 맞추는 효과가 있다.”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은.
“공평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모든 선수의 모든 샷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현실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는 40초 규정 위반에 대한 강화된 벌금과 벌타를 받고, 누구는 아무런 불이익 없이 지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규칙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정신이다. PGA처럼 출전 선수를 줄이는 정책을 병행하는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출전 선수가 많으면 경기의 흐름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룹 간 원활한 흐름이 지체되면 경기 속도를 적정하게 집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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