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R&A)과 미국골프협회(USGA)는 4년마다 골프 규칙을 개정한다. 2019년에는 골프 규칙의 현대화를 내세우며 ‘깃대 꽂고 퍼팅 허용’ ‘벙커에서 클럽의 모래 접촉 일부 허용’ ‘예전 워터해저드 등 포함한 페널티 구역 신설’ 등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있었다. 경기 스피드를 빠르게 하고 상식과 동떨어져 있던 일부 내용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개정해 ‘지루하고 낡은’ 스포츠라는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시 대대적으로 골프 규칙을 손질한 두 단체는 앞으로는 꼭 4년마다 개정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년간 골프계의 반응과 피드백을 반영한 개정안을 2023년부터 적용하기로 하고 지난 11월 변화 내용을 소개한 데 이어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하게 된다. 새해 들어 바뀌는 주요 골프 규칙 내용을 대한골프협회에서 골프 규칙을 담당하는 구민석 팀장과 함께 살펴본다.
새해부터는 장애를 가진 선수들에게 맞춰 수정 적용하던 규칙들을 ‘룰 25’ 항목으로 골프 규칙에 명문화했다. 앞으로 장애인 골퍼들에게 로컬룰을 적용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US장애인오픈을 신설한 데 이어 진일보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카드에 서명하지 않았을 때 실격 처리하던 벌칙을 마지막 홀에 2벌타를 추가하는 것으로 줄일 수 있는 로컬룰 모델을 도입하는 등 상식에 들어맞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음은 주요 규칙 변경 내용이다.
공이 자연적으로 다른 구역으로 움직일 때
규칙에 따라 구제받고 드롭하거나 플레이스, 혹은 리플레이스한 공이 정지하고 나서 자연의 힘으로 움직일 경우 올해까지는 공이 멈춘 곳에서 다음 경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공이 다른 구역으로 움직일 경우, 예를 들면 일반 구역에 있던 공이 페널티 구역으로 움직인다면 벌타 없이 원래 자리에 리플레이스하고 경기할 수 있도록 했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은데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2019년 2월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TPC 스코츠데일(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 4라운드. 미국의 인기 스타 파울러는 2017년 2월 혼다클래식 이후 2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다. 파울러가 11번 홀(파4)에서 친 칩샷이 물기를 머금은 그린에서 멈추지 않고 뒤편 페널티 구역(과거 워터해저드)으로 빠지고 말았다. 1벌타를 받고 드롭한 파울러가 그린을 살피는 사이 공이 경사를 타고 구르더니 다시 물에 빠지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경기위원회는 1벌타를 추가로 부과했다. 파울러는 공을 그린에 올리고 나서 약 5m 거리의 퍼트를 집어넣었지만, 스코어는 트리플 보기가 됐다. 5타 차 선두가 순식간에 1타 차로 좁혀졌다. 당시 규칙은 “자연의 힘으로 움직인 공은 퍼팅 그린에서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멈춘 자리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물에서는 경기할 수 없기 때문에 ‘페널티 구역에 있는 공에 대한 구제’에 따라 1벌타를 받고 나서 구제받아야 했던 것이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불공정하다’ ‘끔찍하다’는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울러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3타를 잃고도 최종 합계 17언더파 267타로 브랜던 그레이스(남아공·15언더파)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당시 ‘플레이어의 잘못이 없는데 벌타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이번 규칙 개정에 포함됐다. 파울러의 경우처럼 일반 구역에 있는 공이 움직여 페널티 구역으로 가는 등 자연의 힘으로 다른 구역으로 공이 움직였을 때는 벌타 없이 원래 자리에 리플레이스하도록 했다. 구제받은 공이 OB 지역으로 움직여도 벌타 없이 원래 자리에 리플레이스하면 된다. 다만 일반 구역에 있는 공이 움직여 일반 구역에 멈출 경우 등 구역이 바뀌지 않았을 때는 움직인 자리에서 경기한다.
라운드 중 손상된 클럽 교체 가능
현재 규칙은 라운드 도중 손상된 클럽은 특별한 경우(외부의 영향이나 자연의 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손상될 때)나 로컬룰이 있을 경우가 아니면 교체할 수 없도록 했다. 해럴드 바너 3세는 2019년 3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1라운드를 앞두고 준비운동 도중 드라이버 헤드에 손상이 생겼다. 일단 13개의 클럽으로 라운드를 시작한 바너 3세는 에이전트를 통해 라커룸에 있던 다른 드라이버를 가져오도록 했다. 경기위원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기 때문에 새로 가져온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로 가져온 드라이버 헤드에 기존 드라이버의 샤프트를 코스에서 조립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2벌타를 받게 됐다. 많은 선수가 이를 불합리하다고 지적하자 로컬룰 모델(G-9)을 채택해 부분적으로 구제해왔다.
하지만 새해부터는 로컬룰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라운드 중에 선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클럽을 손상하거나 일부러 망가뜨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클럽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카트 도로에서 샷을 하다가 클럽 헤드가 긁혔거나 나무 근처에 놓인 볼을 맞히려다가 샤프트가 구부러졌을 경우, 클럽을 고쳐서 다시 사용하거나 아예 경기에서 제외한 후 다른 클럽으로 대체할 수 있다.
잘못 교체한 볼 2벌타에서 1벌타로
라운드 중에는 같은 브랜드의 같은 성능을 가진 공만 사용하도록 하는 원볼 규정(로컬룰 G-4)이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2벌타를 부과했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샷은 비거리 성능이 좋은 공을 사용하고 그린 주변 어프로치샷은 스핀이 잘 걸리는 공을 사용하는 경우 일반 페널티(스트로크 플레이는 2벌타)가 적용됐다. 그리고 다른 볼로 교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볼을 교체해 스트로크를 하면 2벌타가 주어졌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잘못 교체한 볼이나 원볼 규정을 어겼을 경우에도 1벌타만 부과하도록 했다. 페널티는 그 규칙 위반으로 인한 이득이 크지 않다고 볼 경우 1벌타, 이득이 크다고 볼 경우 2벌타가 주어진다. 스코어를 줄여 적는 등 그 이득으로 인해 더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는 실격 처리했다.
새로운 규칙은 볼을 잘못 교체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2벌타를 줄 만큼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후방선 구제에 융통성
후방선 구제는 주로 페널티 구역과 언플레이어블볼을 구제받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이 페널티 구역 경계를 최후로 넘은 지점과 그린의 홀을 연결하는 후방 선상, 혹은 볼과 홀을 연결하는 볼 후방 선상에 기준점을 잡고 그로부터 한 클럽 길이 내에 드롭하는 구제 방법이다. 지금까지 이 구제 방법을 선택할 경우 드롭한 볼이 기준점보다 홀에 가까워지면 다시 드롭하도록 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기준점(볼을 드롭하는 후방선상의 지점)으로부터 사방 한 클럽 길이 이내 지역에 볼이 멈추면 곧바로 인플레이볼이 된다. 기준점으로부터 홀에 가까운 쪽에 볼이 멈춰도 된다는 뜻이다. 후방선 구제는 이미 홀보다 가깝지 않은 지역에서 드롭하기 때문에 한 클럽 이내 지역에서 볼이 앞쪽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볼보다 홀에 가까이 드롭할 염려가 없다는 상식이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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