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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던(오른쪽)이 미 PGA투어의 정책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에드워드 헐리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그린 재킷’은 마스터스의 상징이다.


4월 6일(현지시각)부터 나흘간 제87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선 그린 재킷을 입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회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대회 진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스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 직접 주관한다. 1933년 문을 연 오거스타 내셔널은 기존 회원들의 추천과 동의 없이는 회원이 될 수 없다. 현재 회원은 300명 안팎이며 마이크로소프트(MS)를 일군 빌 게이츠와 투자의 거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같은 유명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전 세계 수많은 대회도 ‘짝퉁’을 사용할 만큼 이 재킷의 영향력은 크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상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왼쪽 가슴에 오거스타 내셔널의 로고가 박혀 있는 그린 재킷은 원래 클럽 멤버들이 입던 옷이다. 영국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의 대표가 빨간 재킷을 입은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오거스타 내셔널의 공식 설명은 ‘마스터스 대회 기간 일반 갤러리와 클럽 멤버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1937년부터 입기 시작했다.


우승자에게 그린 재킷을 준 건 1949년 샘 스니드가 우승했을 때부터다. 당시 오거스타 내셔널은 앞서 우승한 9명에게도 그린 재킷을 줬다. 전년도 우승자가 새로운 챔피언에게 재킷을 입혀주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니클라우스는 1966년 최초로 2연패에 성공하고서 혼자 입어야 했다. 이후 닉 팔도(잉글랜드·1989~90년)와 타이거 우즈(미국·2001~ 2002년)가 2연패에 성공했을 때는 오거스타 내셔널 회장이 입혀줬다. 시상식 때는 우승자와 비슷한 회원의 재킷을 사용하고, 나중에 치수를 재서 따로 만들어 준다.


그린 재킷은 처음에는 뉴욕의 유서 깊은 ‘브룩스 브러더스’라는 양복점에서 제작했다. 1967년부터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해밀턴 양복점에서 납품하고 있다. 주인의 이름은 안감에 붙은 라벨에 실로 새겨 넣는다. 제작 단가는 약 250달러로 추정될 뿐 공개된 적은 없다.


오거스타의 신비주의와 맞물려 그린 재킷은 외부 반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회원들도 라커룸에 걸어둔 채 입어야 한다. 마스터스 우승자만 집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1년 뒤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생기기 전 그린 재킷을 받았던 우승자들이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옷이 수집가들에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클럽의 ‘허가’ 아래 외부에 전시된 그린 재킷도 있다. 하나는 1961년 우승자 개리 플레이어(남아공)의 재킷이다. 그는 자기 고향인 남아공으로 재킷을 가져가고 반납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몇 년간 반납을 요구했지만, 플레이어는 “깜빡 잊고 왔다”라거나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 등의 농담으로 일관했다.


결국 오거스타 내셔널 측은 플레이어가 자기 개인 박물관에 보관하는 조건으로 재킷의 소유를 허락했다. 1938년 우승자인 헨리 피카드의 그린 재킷도 오하이오주 비치우드의 캔터베리 골프클럽 내 ‘피카드 라운지’에 전시돼 있다. 샘 스니드를 포함해 초창기 10명에게 지급된 그린 재킷은 특별히 ‘오리지널 텐’ 재킷으로 불린다. 그중 1934년과 1936년 우승자인 허튼 스미스의 재킷은 2013년 68만2000달러(약 8억9000만원)에 팔렸다. 골프 관련 기념품 중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다.


올해 제87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욘 람이 그린 재킷을 입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마스터스 성공은 그린 재킷의 무한 책임과 자원봉사자 헌신으로 이뤄져”

올해 대회 기간 현장에서 감동적인 사연을 지닌 ‘그린 재킷’ 한 분을 만났다. 

미국 골프계의 ‘대부’로 알려진 지미 던(67·미국)이다. 빌 게이츠도 사정사정해 간신히 회원이 됐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거꾸로 간곡히 부탁해 2005년 그를 회원으로 모셔갔다. 그는 US오픈이 자주 열리는 시네콕 힐스(뉴욕주)를 비롯해 세계 100대 골프장에서 단골 1위로 꼽히는 파인 밸리(뉴저지) 등 유서 깊은 상당수 골프 클럽의 회원도 겸하고 있다. 미국 유력자들의 골프 휴양지로 알려진 세미놀 골프클럽(플로리다주)에서는 체어맨(의장)이다.

금융계의 큰손인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가 1988년 동업자와 함께 세운 샌들러 오닐 앤드 파트너스는 각종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큰 독립 투자은행으로 성장했다. 그는 PGA투어 정책 이사회 대표로 후원 계약, TV 협상, 팬 관계 등 굵직한 결정은 그를 빼놓을 수 없다. PGA투어 커미셔너 선정에도 관여한다. 미국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는 이런 그에게 ‘골프계 궁극의 파워 브로커(golf’s ultimate power broker)’라는 평을 붙여 놓았다. 

마스터스 준비가 한창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회원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입은 그를 드라이빙 레인지 옆에서 만났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부터 대회 준비하는 선수까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지나가던 사람들과 인사와 수다가 이어져 인터뷰가 자주 끊겼다. 그래도 인정 많아 보여 싫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서 오셨다고 했지요. 저는 한국의 골프왕 임성재의 왕 팬입니다”라며 “(임)성재처럼 공을 똑바로 잘 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어요”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올해 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대회 프로암에서 임성재랑 같은 팀이 돼 우승을 차지해 트로피도 받았다고 했다. 

마스터스 기간 그린 재킷 입은 회원들이 골프장 곳곳에서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그린 재킷을 입은 회원들이 코스 준비부터 규칙 적용에 이르기까지 대회의 모든 일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책임을 지는 자세로 활동한다”고 했다. 일반 PGA투어 달리 메이저 대회는 서로 다른 주관 기관이 있다. 가장 비상업적인 대회를 내세우면서도 최고의 흥행을 자랑하는 마스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 주관한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스터스 위크(마스터스 기간 티켓을 지닌 일반 팬에게 공개되는 1주일) 기간 오거스타 내셔널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따뜻함을 느끼고 돌아가는 것”이라며 “마스터스 챔피언이 시상식 때 입는 그린 재킷은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손님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걸 가리킨다”고 했다. 마스터스가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도 잔디 한 포기까지 회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유능한 자원봉사자의 헌신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9·11 테러 때 월드무역센터에서 근무하던 72명(전 직원 171명)의 직원을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그는 “뉴욕의 윙드풋골프장에서 미드아마추어 대회에 참가 중이었는데 참담한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원의 가족을 끝까지 지켜주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사고를 당한 직원들 임금을 한동안 계속 지급한 것을 포함해 직원 유가족의 생계를 직접 책임졌다. 많은 미국인이 감동했다. 어쩌면 그도 참변을 당할 뻔했지만, 골프 덕분에 목숨을 지켰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일 이후로 매 순간 생생히 살아있으려고 노력한다”며 “요즘 시간을 너무 골프장에만 쏟는다는 아내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다”며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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