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8년 차인 옥태훈(27)은 국내 최다 홀인원(5개), 9홀 최저타(9언더파 27타) 기록을 보유한 ‘몰아치기의 달인’이다. 하지만 번번이 대회 초반 선두로 나섰다가 마지막 날 미끄러졌다.
‘도깨비 골퍼’란 별명이 따라붙던 그가 ‘68회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대회(6월 22일)’에서 투어 데뷔 8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더니 그다음 주 열린 ‘KPGA 군산CC 오픈(6월 29일)’에서 연거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상반기 10개 대회에 모두 나서 우승 2회 포함 톱 5에 무려 7차례 이름을 올렸다. 9개 대회서 본선에 올라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1위(4940점), 상금 1위(8억2307만원), 톱 10 피니시 1위(7회), 평균 타수 1위(69.0938타) 등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상반기 최고의 별로 우뚝 섰다. 상금 8억2307만원은 역대 KPGA투어 상반기 최다 상금 신기록. 지난해 장유빈(23)의 11억2904만원을 넘어 한 시즌 최다 상금액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 성적만 놓고 보면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 부럽지 않은 압도적인 성적이다. 옥태훈은 효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머니 고정숙씨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는 첫 우승을 차지했던 KPGA 선수권 우승 상금 3억2000만원을 모두 어머니에게 줬다.
한국 남자 골프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옥태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늘 코스에서 응원하던 어머니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찍은 사진이 감동적이다.
“부동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릴 때 기억으로 어디에 가더라도 인정받고 멋진 분이셨다. 원래 소심한 성격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기죽지 않으려고 어디를 가더라도 장난기 있게 행동했다. 말썽꾸러기였던 나를 골프 선수로 키우느라 어머니가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 같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걸 했다. 신장 기능이 떨어져 오랜 세월 고생하다가 지난겨울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다시 대회장을 찾는다. 씩씩하게 18홀을 다니는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들로서 행복하다.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골프는 어떻게 하게 됐나.
“초등학교 때 육상을 하기 시작했다. 단거리 선수였다. 골프는 5학년 때 시작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방송 관련 일을 하기를 바랐다. 스피치 능력을 키운다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골프를 권했다. 시간이 갈수록 골프라는 운동이 장점이 많은 스포츠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골프를 안 하고 일반 학생으로 성장했다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은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를 지도해준 김종필 프로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연습 그린에서 평범한 퍼팅 라인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휘는(브레이크가 많이 있는) 곳에서 연습했다. 어려운 퍼팅과 까다로운 쇼트게임 연습을 강조하면서 상상력을 풍부하게 갖도록 지도했다. 김규태(김종필 프로의 아들) 코치에게 집중적으로 퍼팅과 쇼트게임을 배우고 있다. 지난 동계 훈련 때 퍼팅의 기본을 잡으면서 올해 도약이 가능했다. 염동훈 코치는 스윙의 원리를 잘 가르쳐준다. 다양한 구질을 자신 있게 칠 수 있게 해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여러 귀인을 만나게 해주는 것 같다.”
옥태훈 골프는 어떤 골프인가.
“내가 공격적으로 치는 선수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안전 위주로 경기한다. 티샷을 하고 난 뒤 홀을 공략하는 두 번째 샷을 할 때 무조건 핀을 보고 쏘는 무리한 공략을 하지 않는다. 8~10m 거리의 퍼팅이 강점이다. 파 5홀에서 3온을 시도하면서도 이글이나 버디를 잡을 수 있는 게 골프라고 생각한다.”
운동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인다.
“솔직히 정반대다. 나는 스윙 때 밸런스가 무너져 피니시가 잡히지 않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골반이 말리는 장애가 있다. 그래서 피니시가 잘 안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펀치샷을 하는 경향이 많아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골프를 잘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경기가 잘 안 풀리면 화를 많이 낸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망친 대회도 많다.”
어떻게 극복했나.
“올해 성격을 고쳐서라도 챔피언이 되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화가 날 상황이 되면 오히려 미소 짓는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KPGA 선수권 마지막 날 거울을 보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반복하고 경기장으로 떠났다. 골프는 마음의 평정심을 잃으면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한국 투어에서는 8년 만이지만 2022년 제주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한국 대회에서 프로 첫 우승을 경험했다.
“그 우승으로 한국 투어와 아시안 투어를 병행할 수 있게 돼 골프의 눈이 넓어졌다. 다양한 국가의 선수가 모이는 아시안 투어에는 아주 멀리 치는 선수, 쇼트게임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선수 등 특징이 뚜렷한 선수가 있다. 이들은 스윙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골프에는 정답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PGA 같은 큰 무대를 꿈꿀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멘털이 더 강해져야 할 것 같다. 골프는 감정적이면 안 되는 운동이다. 나는 표정에서 드러난다. 친구인 임성재가 표정 관리를 가장 잘한다. 멘털이 강한 것이다. 우선 KPGA투어에서 우승을 쌓아 나가고 그걸 바탕으로 해외 무대에 도전해 가고 싶다.”
어떤 골퍼가 되고 싶나.
“문경준 프로처럼 멋진 골퍼가 되고 싶다. 나이와 관계없이 늘 똑같은 운동을 하고 루틴을 지킨다. 그 꾸준함이 정말 멋있다. 어떤 운동이든 1등이 중요하지만 롱런하고 싶은 게 목표다.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고 실력도 있는 선수로 인정받고 싶다. 골프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하고 싶다. 내, 인생도 문경준 프로처럼 밝고, 후배 선수들에게도 인정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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