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티 셰플러(27·미국)는 3월 13일(이하 현지시각) 올해 우승 상금을 450만달러(약 58억원)로 불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총상금 2500만달러) 정상에 올랐다. 셰플러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파72·7275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2개로 3타를 줄여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 2위 티럴 해턴(잉글랜드)을 5타 차로 제치고 트로피를 차지했다.
텍사스 출신의 셰플러는 마스터스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선수로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에 이어 골프 역사에 새로운 이름을 남겼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은 PGA투어가 직접 주관하며 정상권 선수가 빠짐없이 출전하는 대회로, 4대 메이저 대회와 같은 반열에 올라 ‘제5의 메이저’라 불린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도하는 LIV 골프의 돈 공세에 맞서기 위해 PGA투어는 올해 대회 상금 규모를 대폭 키워 총상금 2500만달러(약 325억원)에 우승 상금 450만달러(약 58억원)로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열렸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올해 2승째(통산 6승째)를 거둔 셰플러는 세계 랭킹 2위에서 1위로 발돋움했다.
셰플러는 2월 피닉스오픈 우승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가 1주일 만에 욘 람(스페인)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3주 만에 세계 1위 타이틀을 되찾았다. 최근 남자 골프는 올해 2월 초까지 1위를 차지했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셰플러, 람이 1위 자리를 놓고 거의 매주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셰플러는 낚시 스윙으로 유명한 한국의 최호성을 보는 듯한 독특한 스윙을 한다. 샷을 할 때 두 발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데 특히 스윙이 큰 드라이버 샷은 어드레스 때와 공을 치고 난 뒤 양발의 위치가 확연히 다르다. 주니어 시절 부족한 비거리를 늘리려고 지면 반발력을 극대화하려다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평균 3010야드의 장타 능력을 갖췄지만, 샷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발을 조금 덜 움직이는 아이언 샷의 정확성은 독보적이다. 손목 코킹을 줄이고 백스윙을 간결하게 해 임팩트 순간의 정확성을 높이는 게 비결이라고 한다.
4월 6일 개막하는 마스터스를 앞두고 셰플러의 이야기를 PGA투어를 통해 들어보았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확정하며 환호하는 스코티 셰플러. 사진 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여유 있게 선두를 달리면서도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더라.
“소그래스의 상징인 스타디움 코스의 17번 홀 티잉 구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많이 타수를 줄여놓아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 홀에서는 아주 좋은 샷을 쳤다고 생각해도 물에 빠지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아마 17번 홀로 향하기 바로 전에 캠 데이비스와 토미 플리트우드의 공이 물에 빠지는 걸 봐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담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 명물인 TPC 소그래스 17번 홀에 한 해 아마추어들 공까지 10만 개가 빠진다고 한다. 왜 그렇게 어려운 건가.
“바람이 많이 불고, 수많은 관중의 함성 등 다양한 방해 요소 때문에 이곳에서의 샷은 때로는 정말 어려운 샷이 된다. 내가 딱 원하는 티 샷을 쳤고, 그린에 공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어떻게 공을 치든,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상황들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딱 알맞은 방향으로 불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내 공은 그린에 딱 떨어져 멈췄다.”
18번 홀로 걸어가는 표정이 아주 후련해 보였다.
“17번 홀에서 투 퍼트로 파 세이브에 성공하고 18번 홀로 걸어갈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항상 이런 좋은 우승의 기운을 가지고 마지막 홀을 향할 때면 나와 테드(캐디)는 기분 좋게 걸어간다. 그 순간의 그 느낌은 걸어가는 짧은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우리의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보상받는 느낌이고 그 순간만큼은 즐겁고 기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그 기분을 누린다.”
할머니를 비롯해 가족이 모두 나와 응원하던데.
“18번 홀에서 가족이 모두 모여 나를 기다리는 순간은 정말 특별했다. 가족이 대회장에 함께했던 순간이 꽤 오랜만이었다.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경기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특히 할머니가 함께해 더 좋았다. 18번 홀 그린을 벗어나 언덕을 오른 뒤에 나를 기다리는 가족을 마주하는 순간은 아마도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
2019년 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놀라운 성적을 남기고 있는데 어떤 비결이 있나.
“평소 다른 선수들과 나의 경기를 비교하거나 대회에서 이전에 다른 선수들이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의 이름과 함께 마스터스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선수로 기록되는 것은 기쁜 일 같다. 잭과 타이거와 함께 언급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한 일이다. 현재 내 골프에 자신이 있고 만족한다.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주변 사람들, 내 코치인 랜디 스미스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매사 너무 진지하지 않고, 가끔은 좀 가벼운 느낌도 있지만, 그와 함께라서 매우 즐겁고 좋다. 우승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오고, 그런 경쟁 속에서 많이 배우고 발전하는 느낌이다. 스스로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이를 통해 어떤 부분을 준비하면 될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나의 골프 발전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스스로 알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지난해 1800만달러(약 234억원)의 우승 보너스가 걸린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 선두로 나섰다가 매킬로이에게 6타 차 역전패를 당한 적도 있다. 실패를 겪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심리적 회복 탄력성’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어떤 순간이나 상황에 대해서 과하게 고민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나도 큰 대회 마지막 날 떨리고 두렵지만 우승과는 관계없는 순위로 경기하는 것은 싫다. 긴장의 순간을 이겨내고 팬들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운 좋게도 몇 번의 우승을 할 수 있었고, 프로 골퍼로서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지만,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시험적인 순간들을 겪는 것도 좋다. 이번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소그래스 같은 곳에서의 대회처럼. 지난주 TPC 소그래스에서 단 5개의 보기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곳에서는 버디를 많이 해서 우승을 노릴 수도 있지만, 보기나 더 안 좋은 결과를 잘 피하는 것을 통해 우승할 수도 있다.”
지난해 우승한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가 다가온다.
“PGA투어에서 뛰다 보면, 최고의 선수들이 나오는 큰 대회들에서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런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특별한 일이니까. 지금의 좋은 기운을 몰아 마스터스에서 다시 한번 좋은 성적을 올리고 트로피를 손에 넣으면 좋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