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 4년만에 PGA 투어 우승
김시우. AP연합뉴스 |
좀처럼 표정이 바뀌지 않는 ‘포커페이스’ 김시우(26)가 5.8m 버디 퍼트에 성공하고는 타이거 우즈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포효했다.
25일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캘리포니아주 라킨타) 17번 홀(파3)에서 김시우는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를 잡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방이 워터해저드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인 이 홀의 별명은 ‘앨커트래즈(Alcatraz)’다. 샌프란시스코 만(灣)에 있는 작은 섬으로 형무소로 쓰이던 시절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어 악마의 섬이라 불리던 곳. 정말 지옥의 섬을 탈출한 듯한 표정의 김시우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여러 번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항상 아쉽게 우승하지 못했다.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우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은 매우 뜻깊고 자신감이 많이 생길 것 같아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시계를 돌려 코로나 사태로 사상 처음 늦가을에 열렸던 지난해 11월 마스터스로 돌아가 보자. 국가대표 후배인 임성재(23)가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할 때 김시우는 공동 34위에 머물렀다. 지난 4년간 한국의 간판 골퍼 자리를 후배에게 내주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김시우에게 스윙 코치 클로드 하먼 3세가 통계 숫자와 함께 격려의 말을 보냈다. “통계를 보면 네가 더 잘하는 것들이 아주 많아. 일관성을 높여주기만 하면 돼.” 하먼 3세는 타이거 우즈를 지도했던 세계적인 코치 부치 하먼의 아들이다.
김시우는 이번 대회 그린 적중률 공동 1위(82%)와 그린 적중 시 퍼트 수 공동 1위(1.61개)를 기록했다. 이렇게 레이저 같은 아이언 샷에 퍼팅까지 잘하면 우승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시우는 “지난 2년간 약간 안쪽으로 백스윙하는 것을 고쳤다”며 “지난주 스윙 코치와 다시 한번 스윙을 점검하고 더 편안해졌다”고 했다.
김시우. AP연합뉴스 |
김시우는 이날 공동 선두로 출발한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뽑아내며 합계 23언더파 265타를 기록했다. 이날 무려 11언더파를 치며 무섭게 추격했던 패트릭 캔틀레이(미국)를 1타 차이로 제친 김시우는 상금 120만6000달러(약 13억원)를 받았다. 전반 4개, 후반 4개의 버디를 잡았는데 막판 폭발력이 대단했다. 캔틀레이에게 1타 차로 뒤져 있던 16번 홀(파5)에서 과감하게 5번 우드로 투온에 성공한 뒤 1.2m 버디를 잡아 공동 선두가 됐고, 곧바로 17번 홀(파3) 버디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김시우는 17번 홀 버디 퍼트에 대해 “앞서 퍼팅한 맥스 호마의 퍼팅 라인을 본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스피드만 잘 맞추면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리더보드를 보며 상황에 맞게 경기하려 했다”며 “마지막 3홀에서 승부를 걸었다”고 했다.
김시우가 25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김시우는 18번 홀에서 파를 지키며 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세계 랭킹은 종전 96위에서 48위로 올랐다. 골프채가 극도로 휘어져 보이는 것은 일부 디지털 카메라의 센서가 피사체의 움직이는 속도보다 느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AFP 연합뉴스 |
김시우는 2016년 8월 윈덤 챔피언십과 2017년 5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3년 8개월 만에 통산 3승째를 올렸다. 그동안 허리 부상 등이 겹치며 준우승 한 번, 3등 두 번을 했다. 김시우는 지난주 96위이던 세계 랭킹을 48위로 48계단 끌어올렸다. 지난주 18위였던 임성재는 17위가 됐다. 김시우는 “전날 잠을 잘 못 잘까 봐 수면 유도제인 멜라토닌까지 먹고 잤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경기에선 떨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회가 열린 캘리포니아주 라킨타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의 17번홀 그린. /AFP 연합뉴스 |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는 김시우와 인연이 깊다. 그가 신성고 2학년 재학 중이던 2012년 12월 역대 최연소(17세 5개월)로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한 곳이다. 그가 두 번째 우승을 거둔 2017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를 설계한 고(故) 피트 다이가 이곳도 디자인했다. 그래서 두 코스 17번 홀이 판박이처럼 닮았다. PGA웨스트는 지난해 한국인인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69)이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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