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몬트는 지옥이었다.
16일(한국 시각) 막을 내린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125회 US오픈 무대였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컨트리클럽(파70)은 J J 스폰(35·미국)에게만 언더파를 허락했다. 그리고 전성기 타이거 우즈에 버금간다는 평을 듣던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비롯한 정상급 선수들을 모두 무릎 꿇렸다. 진정한 승자는 오크몬트였다는 말까지 나왔다. 1903년 개장한 오크몬트는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가장 공정한(가혹한) 테스트를 한다”는 평을 듣는다. US오픈 최다 개최 코스(10번)다.
개미허리처럼 좁고 단단한 페어웨이는 좀처럼 공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168개 벙커와 12.5㎝ 억세고 질긴 러프가 그 공을 삼켰다. 엄청나게 빠른 그린에서 선두들은 퍼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페어웨이를 놓치면 보기, 그린을 놓치면 더블보기였다.
매 홀 고문받듯 경기하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선수가 속출했다. 올해 마스터스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모두 우승)’ 위업을 이룬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그중 하나. 2라운드 17번 홀(파4)에서 티샷 실수를 하고는 클럽을 던져 티잉 구역을 표시하는 티 마커를 부쉈다. 간신히 컷을 통과한 매킬로이는 공동 19위(7오버파)로 대회를 완주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2019년 디오픈 우승자 셰인 라우리(아일랜드)는 그린에서 마크를 하지 않고 공을 집어 올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17오버파로 2라운드 만에 짐을 쌌다. “빌어먹을 골프장(F*** this place)”이란 탄식과 함께. 8오버파로 컷(7오버파)을 통과하지 못한 2023년 US오픈 우승자 윈덤 클라크(미국)는 분풀이로 라커 문짝 두 개를 망가뜨렸다. 1라운드에서 2언더파 공동 3위로 출발했지만 사흘간 14타를 잃은 김시우는 “솔직히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2020년과 2024년 US오픈 우승자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도 10오버파로 2라운드 만에 백기를 들었다.
2022년 2월부터 승률 25%를 기록하며 16승을 올렸던 셰플러는 나흘간(73·71·70·70타) 한 번도 언더파를 작성하지 못한 채 보기 17개와 더블보기 1개로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보기(이하) 스코어를 냈다. 4오버파 284타로 공동 7위. 그는 1라운드에서 73타를 치고는 “하루 종일 정신적으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지옥에서 스폰은 어떻게 살아 돌아왔을까. 주니어 시절부터 프로 무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늘 한계를 느끼며 조금씩 더 좋은 골퍼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장점이 있었다. 중도에 꺾이지 않는 마음.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147번째로 출전한 PGA투어 경기인 2022년 발레로 텍사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올렸다.
스폰은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샘 번스(미국)에게 1타 뒤진 공동 2위로 4라운드를 출발했다. 전반에만 5개 보기. 하지만 경기 중간 쏟아진 폭우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1시간 37분 경기가 중단된 동안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의 날(미국)인 오늘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사랑하는 두 아이가 있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서고 싶어 했던 US오픈에서 이렇게 골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맥스 호마(미국)가 전해준 우즈 이야기를 떠올렸다. “US오픈에선 무리해서 스코어를 줄이려 하지 말고 자기 자리만 잘 지키고 있어도 기회가 온다”는 조언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경기가 풀렸다.
스폰은 12번 홀(파5) 버디를 시작으로 7개 홀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였다. 짧은 파4홀인 17번 홀(312야드)에서 원 온에 성공해 투 퍼트로 버디를 잡아 단독 선두에 나섰다. 그리고 18번 홀(파4)에서는 20m 거리 버디 퍼트에 성공했다. US오픈 역사에 남을 장면이었다. 스폰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때도 악천후로 경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을 살려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폰은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악천후로 하루 순연된 연장전에서 17번 홀(파3) 티샷을 물에 빠트리는 등 실수를 연발하며 매킬로이에게 패배했던 아쉬움을 털어냈다.
스폰 최종 기록은 1언더파 279타. 2위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는 1오버파 281타였다. 우승 상금은 430만달러(약 59억원). 이날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스폰은 지난주 25위에서 역대 최고 순위인 8위로 17계단 뛰어올랐다. 2025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스폰의 세계 랭킹은 115위였다.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이 3위(2오버파)에 올랐다. 캐머런 영(미국)과 티럴 해턴(영국), 카를로스 오르티스(멕시코), 샘 번스(미국)가 공동 4위(3오버파)였다. 김주형이 공동 33위(9오버파), 김시우가 공동 42위(12오버파), 임성재가 공동 57위(16오버파)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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