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차 선두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의 18번홀(파4) 드라이버 샷이 페어웨이에 안착했을 때 PGA(미 프로골프) 투어 첫 우승의 8분 능선에 올랐다는 평이 나왔다. 남은 거리는 148야드. 워낙 아이언 정확도가 뛰어나 ‘유럽의 아이언 맨’이라는 플리트우드가 버디를 잡거나 못해도 파를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대관식은 열리지 않았다. 23일 미국 코네티컷주 TPC 리버하이랜즈에서 막을 내린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18번 홀은 골프 세계 랭킹 13위인 플리트우드에게 ‘골프 잔혹극’의 무대가 됐다. 아널드 파머(미국)와 그레그 노먼(호주) 같은 레전드도 메이저 대회에서 당한 역전패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을 만큼 후유증은 크다.
◇우승 눈앞에서 실수, 왜?
우승 없이도 미 PGA 투어에서 통산 상금 3000만달러를 넘긴 토미 플리트우드가 23일 끝난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18번 홀 보기로 역전을 허용, 첫 우승 기회를 날렸다./AFP 연합뉴스
18번 홀로 돌아가, 플리트우드의 두 번째 샷. 9번 아이언으로 빈 스윙을 하던 플리트우드는 갑자기 클럽을 피칭 웨지로 바꾸었다. 그린 앞 벙커를 넘기는 대신 약간 짧더라도 그린 앞쪽을 겨냥하는 전략이었다. 대개 역전패는 무모한 공격으로 벌어진다. 플리트우드는 신중하게 접근했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거리가 짧아 홀까지 15m 떨어진 그린 프린지에 공이 떨어졌다. 그래도 2퍼트로 막을 수 있었지만, 첫 퍼트가 너무 짧은 실수가 이어졌다. 2.5m 파 퍼트까지 홀을 외면했고, 외신들은 ‘가슴이 찢어지는(heartbreaking) 보기’라고 썼다. 한덕현 중앙대 의대(스포츠정신건강의학) 교수는 “그토록 원하던 우승을 눈앞에 둔 특별한 상황이 되니까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평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반면 같은 조의 브래들리는 138야드를 남긴 18번홀 두 번째 샷을 홀 1.7m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한 홀에서 2타가 뒤집히는 투 샷 스윙(two-shot swing)이 나와 브래들리가 통산 8번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경기를 마친 플리트우드는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정말 화가 난다. 우승할 만한 경기를 했지만 결국 해내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앞으로 겪을 걸림돌로 만들 수는 없다. 긍정적인 부분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18번 홀 비극(悲劇)의 주인공으로는 프랑스 골퍼 장 방 드 벨드도 빠지지 않는다. 1999년 스코틀랜드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오픈 최종 4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그는 메이저 골프 역사상 최악의 역전패를 당했다. 18번 홀(파4) 티샷을 하기 전 3타를 앞서고 있었다.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하지만 귀신에게 홀린 듯 불안정한 샷으로 개울과 러프를 전전한 끝에 트리플보기로 마쳤다. 결국 연장에서 폴 로리(스코틀랜드)에게 졌다. 이날 패배가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그는 훗날 퍼터 하나만 들고 카누스티 18번 홀을 다시 찾았다. 그러고 티샷부터 퍼터로만 플레이해도 트리플보기보다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장 방 드 벨드가 1999년 디오픈 18번 홀에서 개울에 빠진 자신의 공을 보고 있다. 더블보기만 해도 메이저 챔피언이 될 수 있던 그는 이 홀에서 3타를 잃으며 연장에 들어갔고,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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