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link(눈 깜빡할 새도 없다)”, “Golf, but Louder(골프, 하지만 더 시끄럽게)”라는 슬로건은 단지 마케팅 문구가 아니었다. 2025년 5월, LIV 골프가 한국에서 연 첫 대회는 전통 골프의 관성을 깨부순 ‘이질적 축제’였다. 경기장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으로 요동쳤고, 장내 아나운서는 “소리 질러!”를 외치며 스타 선수들을 소개했다. 디섐보, 미켈슨, 켑카, 욘 람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를 시작하는 ‘샷건 방식’은 그 자체로 쇼였다.
한국 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20~30대 팬들이 대거 몰려 자유롭게 응원하고 사진을 찍는 분위기는 과거의 조용한 골프장과는 딴판이었다. 파3홀에서는 DJ가 라이브 공연을 펼쳤고, 경기장엔 키즈존과 게임 존, K푸드로 꾸려진 푸드트럭 존까지 마련돼 ‘골프 페스티벌’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2025년 5월 4일 인천 연수구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LIV골프 코리아 파이널라운드를 찾은 팬들이 2번 홀에서 티샷을 준비 중인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뉴스1
대회 마지막 날에는 1만5000명, 사흘 동안 총 3만500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LIV는 관람객 수를 공식 집계하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사흘 입장권이 30만원, 프리미엄 좌석은 100만~800만원 원대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외형 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깔려 있다. ‘도대체 이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LIV 골프는 천문학적 상금과 거액의 계약금을 뿌리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익 구조는 갖추지 못했다. 디섐보는 개인전 우승 400만 달러와 단체전 우승으로 475만 달러(약 67억 원)를 벌었다. 하지만 방송 중계권, 광고, 스폰서 수익은 미미하다.
이 모든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자금력이 있다. 미국 매체들은 스포츠 비즈니스 뉴스레터 ‘머니 인 스포트(Money in Sport)’를 인용해, 2022년 6월 출범한 LIV골프에 2025년까지 약 50억 달러가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PIF는 추가 자금 지원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최소 경기 수 확보, ▲수익 일정 기준 충족, ▲폭스 스포츠 등 주요 방송사와의 중계 계약 체결이다. 2024년 1~10월 LIV 골프의 매출은 8200만 달러에 그쳤고, 연간 약 1억 달러 수익은 “투자 대비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PIF의 투자 여력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LIV의 비즈니스 모델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스타 선수들과 체결한 3~4년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들의 재계약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지원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PIF는 2024년 기준 약 941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2016년의 1600억 달러에서 390%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세는 사우디의 ‘비전 2030’ 전략에 따라 경제 다각화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한 결과이다. 2030년까지 자산 규모를 2조 달러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LIV골프에 투자한 50억 달러는 그에 비하면 ‘이자 수익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제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자산 가치가 약 70억 달러”라며 “그보다 훨씬 낮은 투자로 글로벌 스포츠 판도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렇게 큰돈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LIV를 사우디가 펼치는 글로벌 스포츠 외교의 일환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 사우디 축구 리그의 글로벌화, FIFA 월드컵 유치 등과 궤를 같이하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다.
LIV골프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호주, 싱가포르, 홍콩, 한국 등에서 잇달아 대회를 열며 ‘사우디 자본의 글로벌 발자국’을 찍고 있다.
실제 이 같은 대담한 투자로 PGA 투어의 독점 체제를 흔드는 데는 성공했다. 2023년 6월 PGA 투어와 LIV골프의 전격적인 합병 발표는 PGA 투어의 항복 선언처럼 여겨졌다. 전 세계 골프계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이후 절차는 사실상 중단됐다. LIV골프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PGA와 LIV의 합병은 15분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으나,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보다 복잡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미국 내 여론, 반독점 이슈, 기존 PGA 후원사의 반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반면, PGA 투어는 이미 2024년 초 투자 컨소시엄 SSG로부터 3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단순한 ‘돈 싸움’이 아닌, 구조적 지속 가능성을 겨냥한 전략 전환이다.
LIV 골프는 분명한 새로움을 선사한다. 젊은 팬층의 유입, 스타 선수들의 쇼맨십, 혁신적 포맷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운명을 가를 핵심적 질문은 뚜렷하다. 화려한 LIV의 불꽃은 얼마나 더 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불을 지피는 연료는 언제까지 공급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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