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와 골프 코스간에도 천생연분이 있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골프 역사를 쓴 ‘불굴의 골퍼’ 벤 호건에게는 이른바 ‘벤 호건의 뒷마당(Hogan’s Alley)’이라는 코스가 있다. 진 사라센에 이어 두 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룬 호건은 리비에라CC(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1947년과 1948년 연달아 LA오픈을 우승하고, 같은 코스에서 열린 1948년 미국 오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벤 호건이 16개월 동안 리비에라CC에서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자 리비에라CC는 벤 호건의 뒷마당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갖고 있는 잭 니클라우스에게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이 있다. 타이거 우즈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Greatest of all time; GOAT) 자리를 놓고 다투는 니클라우스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꿈의 무대’ 마스터스를 6번이나 제패했다. 니클라우스가 메이저 최다승(18승)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교두보 역할을 했다. 우즈의 텃밭은 어디일까? PGA 투어에서 82승으로 샘 스니드와 최다승 타이 기록을 갖고 있는 우즈의 찰떡궁합 코스는 하나가 아니다. 세 곳의 골프 코스에서 각각 8번씩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토리파인스CC(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베이힐 클럽 앤 로지(플로리다주 올랜도)와 파이어스톤CC(오하이오주 애커런)가 텃밭 역할을 했다.
토리파인스CC에서는 4년 동안 2008 미국 오픈을 포함해서 5승을 했다. 베이힐에서 열린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는 2000년부터 4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세 곳의 골프 코스에서 PGA 투어 24승을 거두었으니 우즈만의 보물섬이다.
2025 마스터스에서 6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된 로리 매킬로이도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골프 코스를 갖고 있다. 바로 2025 PGA 챔피언십이 열린 퀘일 할로 클럽이다. 스물 한 살 생일 이틀 전에 PGA 투어 첫 우승을 바로 퀘일 할로 클럽에서 기록했다. 2010 퀘일할로 챔피언십 마지막 날 10타를 줄이며 필 미켈슨을 4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 웰스 파고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는 61타를 기록하며 7타 차 21언더 파로 우승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골프 코스에서 열린 2017 PGA 챔피언십에서는 공동 22위에 그쳤다. 4라운드에서만 3언더파를 기록했을뿐 1~3라운드에서는 4타를 잃어, 4라운드 합계 1오버 파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1년과 2024년에도 퀘일 할로 클럽에서 우승했다. 2024 웰스 파고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는 8개 홀에서 8타를 줄였다. 8번 홀부터 15번 홀까지 버디-버디-이글-파-파-버디-버디-이글을 기록하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였다. 2위인 잰더 쇼플리를 5타 차로 제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매킬로이가 4승을 거둔 퀘일 할로 클럽은 조단 스피스나 도티 페퍼의 평가대로 ‘로리 매킬로이CC’가 될 수 있을까. 2025 PGA 챔피언십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2025 PGA 챔피언십에서 퀘일 할로 클럽은 파71, 7626야드로 세팅됐다. 2017년 코스와 26야드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코스는 많이 달라졌다. 1961년 개장 이래 아널드 파머, 톰 파지오의 레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2022년 프레지던츠 컵을 개최하면서 더 어렵게 개조되었다. 퀘일 할로 클럽은 장타자와 롱 아이언 샷을 잘 치는 선수에게 유리한 코스라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그린 마일(Green Mile; 사형수가 마지막 날에 전기의자로 걸어가는 복도의 색깔)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명이 붙은 마지막 세 홀을 잘 이겨내야 한다.
매킬로이는 2017년 PGA 챔피언십에서 그린 마일에서 4라운드 합산 1오버 파, 2021 웰스 파고 챔피언십 1오버 파, 2024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2오버파를 기록했다. 그린 마일의 마지막 홀인 18번 홀에서 2015년 이래로 단 한 번도 버디를 잡지 못했다. 2015년부터 4번의 대회(우승 3회 포함)에서 16라운드 동안 18번 홀에서 13번의 파, 2번의 보기, 1번의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퀘일 할로 클럽의 13~15번 홀은 ‘마지막 식사(last meal)’라 불린다. 그린 마일로 가는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허용하는 곳이란 의미다. 13번 파3 홀(205야드), 14번 파4 홀(344야드)과 15번 파5 홀(577야드)의 세 홀은 잘 차려진 밥상이다.
넓은 퍼팅그린의 파3 홀에서 파를 기록하며 식욕을 돋운 다음 14번과 15번 홀에서는 적극적으로 버디를 잡아야 한다. 14번 홀은 원 온이 가능한 파4 홀이다. 2017 PGA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는 289야드로 세팅되기도 했다. 15번 홀은 투 온이 가능한 파5 홀이다. 220-270야드 내외의 우드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는 파5 홀로 퀘일 할로 클럽에서 가장 쉬운 홀이다.
이 세 홀에서 매킬로이는2017년 PGA 챔피언십에서 4라운드 합산 2 언더 파, 2021 웰스 파고 챔피언십 5언더 파, 2024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6 언더 파를 기록했다. 특히 2024년 4라운드에서는 13번 홀 버디, 14번 홀 버디, 15번 홀 이글 쇼를 연출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올해 ‘숙원’이던 마스터스 우승을 이룬 매킬로이는 전인미답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한 해에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퀘일 할로 클럽에서 PGA챔피언십을 우승한다면 다음에는 오크몬트CC의 US오픈이 기다린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디 오픈이 매킬로이의 고향 코스인 로열 포트러시 골프 클럽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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