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중부 지역에 새벽부터 많은 비가 쏟아진 주말 새벽. 서울에 사는 A씨는 인천 영종도에 있는 골프장의 예약 취소를 위해 출발하기 2시간 전에 전화를 걸었다. 빗줄기가 거세 당연히 전화로 취소해줄 줄 알았는데 수화기 너머 답변은 뜻밖이었다. “오셔서 현장에서 결정해주세요.”
비가 계속 내리자 몇 차례 더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한 시간 가까운 빗길 운전을 해 골프장에 도착한 A씨는 동반자들과 만나 클럽하우스에서 아침까지 먹으며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줄 몰랐다. 티오프 시간이 돼도 빗줄기가 더 거세지자, 그제야 골프장 측에서 “집에 가셔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객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행패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경기도 용인 한 골프장을 찾은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골프장은 우천 취소를 안 해주기로 악명이 높은 곳. 비가 오는 와중에도 일단 라운딩을 시작해 전반 9홀을 돌았다. 도저히 더는 칠 수 없을 것 같아 중단하겠다고 하자, “진행 판단은 (골프장) 매니저가 하니 30분간 기다려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터무니없이 비싼 간식을 먹으며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줄 몰랐다. 30분쯤 지난 뒤 매니저는 “이슬비로 판단되니 여기서 중지하면 18홀 요금을 내고 가셔야 한다”고 해 결국 빗속에서 남은 홀을 돌아야 했다.
이 같은 풍경은 최근 두 달 사이 주말에 수도권 지역에 비가 내리는 날이 잦아지면서 이 일대 골프장에서 자주 보였다.
호우 경보가 내리거나 골프장 현장에서 많은 비가 쏟아지지 않는 한 대부분 골프장은 전화 예약 취소를 받지 않는다. “고객이 전화를 하는 곳과 골프장 날씨가 워낙 다르고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판단하는 게 맞다. 주말 황금 시간을 예약한 고객들이 하는 전화 취소를 받아주면 골프장의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이유다. 만약 비를 이유로 골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4명 중 2~3명분 요금을 위약금으로 받거나, 3개월 예약 불가 등 불이익을 준다.
그러나 날씨 관련 정보를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요즘, 이 같은 자세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골퍼들 불만이다. 시간대별 강수량과 바람까지 예측할 수 있는데 무작정 예약 취소를 거부하는 건 부당하다는 항변이다. 선수들이 하는 골프 대회도 낙뢰나 그린에 공을 세울 수 없을 정도 바람이 불거나 물이 고일 경우 경기를 중단한다.
악천후로 골프가 중단된 뒤 요금과 관련한 분쟁도 끊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비가 오는데도 가급적 시작하도록 한 뒤, 홀별 정산을 해주지 않고, 한두 홀만 쳐도 9홀 요금을 받는 곳도 많다.
신두철 한국골프용품 유통연구소 소장은 “골프장 예상 강수량 등을 미리 정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전화 예약 취소를 받는 등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공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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