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인생에 가장 감격스러운 우승은 언제일까. 아마추어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정민(33)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도 11승에 빛나는 정상급 선수. 그는 “가장 최근에 한 우승이 기억에 남기 마련이지만 내가 꺾이지 않는 선수라는 걸 증명한 2021년의 9번째 우승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굴곡 없는 선수는 없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빛나는 것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최다승 타이기록인 82승(메이저 대회 15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여러 부상과 스캔들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정민은 2021년 10월 전북 익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5년7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맛봤다.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대회는 알바트로스 8점, 이글 5점, 버디 2점, 파 0점, 보기 -1점, 더블보기 이상 -3점 등 각 홀 성적에 매긴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린다. 이글과 버디를 잡을 때 가산점이 높아 공격 위주의 경기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 박민지에 8점 뒤진 8위였던 이정민은 최종 라운드에서 무려 버디 10개를 몰아치고 보기는 1개로 막아 19점을 올리며 최종 합계 51점으로 대역전극을 썼다. 2016년 3월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무려 5년7개월 만에 거둔 통산 9승째였다.
베트남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동계 전지훈련을 하던 이정민은 당시 우승이 이후의 골프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우승을 못하는 기간이 오래 이어지면서 골프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점점 그 상처가 두려움으로 변했다. 우승 경쟁을 벌일 때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해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며 우승을 놓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버디 기회가 오면 두려워도 무조건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 그 우승을 하고 난 뒤에도 부진할 때가 있지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이정민은 2022년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PLK 퍼시픽링크스 코리아 챔피언십에서 10승을 채웠고, 2024년 4월 크리스에프앤씨 KLPGA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런 꺾이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정민은 강한 체력에서 강한 정신력이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동계훈련 캠프에서 저녁 식사 후에 야간 훈련의 하나로 하는 ‘셔틀런(일정 구간을 속도를 높여가며 하는 왕복 달리기)’에서 10~20대 선수들을 제치고 상위권에 들 정도로 강한 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골프는 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 특징을 지니고 있어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체력을 길러주는 스키를 즐긴다”고 했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동계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스키장에서 산다고 한다. 스키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패트롤 수준의 실력이라고 동료가 귀띔한다.
이정민은 “매년 젊고 장타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KLPGA투어에 들어오고, 코스는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우승이 점점 힘들어지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꺾이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정민의 롱런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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