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순의 평일에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 건물 라이프 영관 10·11층에 자리 잡은 영화관 CGV 송파를 찾았다.
상영 중인 ‘글래디에이터2’ ‘청설’ 등 영화를 홍보하는 시설물과 입장권 판매하는 곳, 팝콘과 간단한 먹을거리, 음료수를 판매하는 매장 등 여느 영화관과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관, 2관, 3관 등 숫자가 적힌 상영관과 달리 ‘디 어프로치(THE APPROACH)’라고 적힌 곳의 문을 열자 전혀 생각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1·2층을 탁 터 시원한 공간에 밝은 조명 시설이 돼 있고, 낮은 곳에서 높은 쪽을 볼 수 있도록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2월 이전만 해도 263석을 갖춘 제8관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프로 골퍼 지망생인 신승원(19)씨는 이날 디 어프로치를 처음 방문해 타이틀리스트 드라이버 신제품인 GT 피팅을 받고 있었다. 드라이버 거리 270m를 넘는 장타가 영화관의 사운드트랙처럼 쾅쾅 울렸다. 실내 스크린 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웅장한 규모에 신이 난 듯 힘차게 클럽을 휘둘렀다.
CGV 송파가 상영관을 개조해 만든 쇼트 게임 연습장 ‘디 어프로치’. 600인치 대형 스크린과 벙커, 그린 등을 갖추고 있다.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와 협업을 통해 평일엔 골프 피팅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민학수 기자 스크린 골프장 3배 높은 층고, 타구음 더 명확히 들려 디 어프로치는 스크린 골프장의 최소 설치 규격인 2.8m보다 세 배 높은 8m 층고(층높이)에 약 330㎡(100평) 면적이다. 골프 전용으로 제작한 스크린 화면은 가로 14m, 높이 6m로 약 600인치. 곧 계단 쪽 공간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세로를 16m(약 650인치)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타석에서 화면까지 거리는 23m여서 실제 공이 날아가다 화면 속 골프장으로 이어 날아가는 박진감이 느껴졌다. 신씨는 “실내인데 이런 큰 공간에서 피팅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며 “클럽 타구음도 더 명확히 들리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피팅받을 수 있어서 너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피팅을 담당한 타이틀리스트 강용훈 피터는 “영화 상영관이었던 시설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골프 피팅을 위해 건물을 지은 것처럼 뛰어난 공간이다”라고 했다. 실제 이곳에서는 드라이버부터, 우드, 하이브리드, 아이언, 웨지를 피팅할 수 있고, 퍼터는 전 모델 시타가 가능하도록 갖춰 놓았다. 지난 5월부터 평일 낮 12시 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4명씩 타이틀리스트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제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예약률 100%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피팅을 받은 9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389명이 참가했다. 만족도 9.82점(10점 만점)이었다. 동시에 두 명이 피팅을 받을 수 있다. 골프 스크린을 절반씩 나누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특히 웨지 피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웨지는 실내 피팅이 까다로운 클럽이다. 클럽 헤드의 로프트, 바운스, 그라인드 등 선택이 다양한데 러프와 벙커 등 다양한 조건에서 성능을 점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이틀리스트 웨지 피팅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타이틀리스트가 운영하는 퍼포먼스 센터와 성수동 시티투어밴을 제외하면 국내에선 디 어프로치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CGV 공간 사업팀 주형태씨는 “밝은 조명에서도 스크린 영상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기술과 벙커 샷을 해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공기조절 시스템 등은 영화관에 특화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CGV에서 운영하는 클라이밍 짐, 볼링 펍, 만화 카페, 미션 브레이크. /CGV 관객 감소 추세, 상영관 용도 다양화로 대응 CGV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산업이 발전하면서 영화 관객이 크게 줄자 클라이밍 짐, 만화 카페, 체감형 게임장 등 상영관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영화관 산업은 위기 상황이다. 관객 수가 급감한 지방 영화관을 중심으로 상당한 위약금을 물고라도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문제는 그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CGV를 비롯한 영화관 운영사는 영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10년대 중반15~20년짜리 초장기 임대차 계약을 경쟁적으로 맺었다. 당시 맞춤형으로 시공해야 하는 건물 소유주와 점포를 늘리려는 영화관 운영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모두 안정적인 장기 임대차 계약을 선호했다. 영화관은 스크린, 음향 시설, 좌석 등을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음식점, 카페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관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영화관이 돈 먹는 하마가 된 것이다. CGV 송파는 원래 8관 1481석 규모였다. 기존 10~11층에 걸쳐 있던 8관과 11층의 유휴 시설을 활용해 지난해 2월부터 쇼트 게임 골프 연습장 디 어프로치를 개장했다. 골프의 어프로치 샷에서 따온 브랜드 이름이다. 올해 5월 타이틀리스트와 협업을 통해 평일 피팅 룸으로 사용하면서 이용률이 치솟기시작했다. 주말 쇼트 게임 연습 고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내년 1월 타이거 우즈가 주도하는 스크린 골프 리그 TGL은 전 세계 스크린 골프 산업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화 산업과 골프 산업이 융합한 디 어프로치는 기존 스크린 골프를 능가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디 어프로치는 TGL의 전용 경기장인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의 소파이(SoFi) 센터와 비교해도 규모 면에서 손색이 없다. TGL에서 사용하는 스크린 크기는 가로 19.5m, 세로 14m로 2000석의 관중석을 갖추고 있다. 50야드(약 45m) 이상 거리는 스크린 골프 형식으로, 50야드 이내의 플레이는 경기장에 설치된 실제 잔디 그린과 모래 벙커, 어프로치 구역에서 샷을 하는 방식이다. 최첨단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확한 기술력은 뚜껑을 열어봐야 확인할 수 있다. TGL은 2024년 1월 9일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2023년 11월 발생한 경기장 돔 지붕 붕괴 사고로 1년 연기됐다. CGV는 이미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 등의 오감을 자극하는 4DX 기술과 CGV와 카이스트가 공동 개발한 영화 상영 포맷인 스크린X 기술 등 기존 시뮬레이터 업체를 뛰어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두 기술을 접목하면 영화 속 장면에 따라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좌석 뒤쪽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 시원한 바람 효과, 실제로 활강하는 듯한 좌석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것처럼 270도까지 스크린을 삼면으로 확장해 화면이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할 수 있다. 디 어프로치가 위기를 맞은 영화관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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