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지 여드레 째 되는 날 물이 떨어졌다. 어린 왕자와 함께 샘을 찾아 나섰다. 별들이 보였다. “별은 보이지 않는 꽃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이 말을 듣고 나는 이 모래의 신비로운 빛남을 이해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생텍쥐페리(1900~1944)가 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고단한 인생의 현실에서 꿋꿋하게 꿈을 찾아 떠날 용기와 지혜를 전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로 ‘회복 탄력성’을 꼽는다. 그만큼 많은 굴곡을 거쳐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영한(33·신한금융그룹)은 프로 데뷔 초기부터 ‘골프계의 어린 왕자’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많은 팬들이 처음엔 준수한 외모에 끌리고 다음엔 공손한 태도와 말투에 끌린다. 그리고 우승을 두차례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준우승을 하고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서 더 큰 매력을 찾는다.
‘어린 왕자’라고 불리기에는 나이도 들고 가정도 꾸렸지만 송영한은 골프라는 막막한 사막에서 여전히 별을 찾아 나서는 ‘어린 왕자’다.
송영한은 지난 6월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코오롱 제66회 한국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우승자인 김민규와 함께 메이저대회인 디오픈 출전권을 땄다. 1타차 선두로 출발했지만 작은 불운이 겹치는 가운데 등수가 더 밀릴 위기가 있었지만 마지막 홀 버디로 2위까지 주어지는 디오픈으로 가는 티켓은 지켰다.
18일 개막하는 디오픈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에서 현지 적응 훈련 중인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이저대회 디오픈은 몇 년 만의 출전인가?
“2017년 조던 스피스가 우승하던 당시 디오픈(잉글랜드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 처음 참가했다. 그해 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SMBC 싱가포르 오픈에서 준우승해 4위까지 주는 출전권을 따냈다. 디오픈의 링크스코스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페어웨이이와 러프, 그린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뉘는 지 알수 없을 정도여서 혼동스러웠고 날씨도 하루에 사게절을 다 경험할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골프가 출발했구나 깨달음을 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컷 기준선으로 3라운드에 진출해 공동 62위로 마쳤다. 나흘간 경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한국에서 첫 우승 기회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날 경기가 나흘 중 가장 안풀렸다. 9번홀에서 티샷을 실수해 러프에 공이 떨어졌는데 정말 공이 많이 묻혀 있었다. 두 번째 샷도, 세 번째 샷도 완전히 러프에 묻힌 공을 쳤다. 더블보기를 했지만 나름 잘 지킨 스코어였다. 우승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걸 다시 느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에 버디를 잡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송영한은 지난해 8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산산 KBC 오거스타에서 통산 2승을 올렸다. 2016년 1월 JGTO와 아시안투어가 공동 주관한 SMBC 싱가포르오픈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를 따돌리고 우승 한 이후 약 7년 7개월 만이었다.
-통산 2승을 거두었을 때 심정은 어땠나?
“오랜 만의 우승이어서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생각 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그 다음 주에도 시합이다 보니까 기쁨이 오래가지는 않더라. 우승을 하면 오히려 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 같다. 사실 우승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몰아붙여야 한다.”
-3년 전 결혼한 아내와는 축하 파티를 했을 것 같다.
“아내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우승 상금으로 맛있는 건 먹었다.”
-우승은 생각처럼 많지 않지만 30대 이후에도 꾸준히 성적을 내고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중인 것 같다. 어떤 비결이 있나.
“2022년 9월부터 친구인 이정우 프로가 스윙을 봐주고 있다. 저보다 투어를 빨리하고 빨리 그만둔 친구인데 제가 경기에 부족한 부분을 잘 짚어준다. 전체적으로 데이터를 보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객관적으로 지적해준다. 골프 선수들이 자신을 분석하는 게 정말 어렵다. 객관적으로 하기 어려운데 그런 부분에서 큰 도움을 준다. 일본인 캐디와 함께 이 프로도 이번 디오픈에 코치로 함께 간다.”
-송영한의 골프를 정의 내린다면?
“스펙터클하지는 않지만 스마트한 골프를 한다고 생각한다. 확률적으로 판단해서 그때 상황과 느낌에 따라 선택을 하고 친다. 장점이라면 안정감을 꼽을 수 있고, 보완하고 싶은 단점이라면 좀 더 과감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골프는 어렵다. 성공하면 잘한 선택이고 실패하면 무모한 선택이 된다.”
-일본 투어와 한국 투어를 비교한다면?
“한국 투어는 집 같은 곳이어서 좋고 일본투어는 골프 치기 위한 환경이 잘 돼 있어서 좋다.”
-샷이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비거리도 좋은 편이다
“골프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요령이다. 요령은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게 아니고 본인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쌓아나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상현 프로는 정말 요령이 좋은 선수다. 롱런을 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요령이 좋은 선수들이다.”
스피스와 셀카 "김치~" 2016년 SMBC 싱가포르 오픈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한 송영한(오른쪽)이 기자회견장을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넨 당시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와 셀카를 찍었다.
-어떤 선수의 경기를 눈여겨보나?
“스코티 세플러의 스윙을 많이 본다. 스윙 때 셰플러의 발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이렇게 쳐도 이렇게 잘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로리 매킬로이는 따라할 수 없는 스윙이다. 아마추어에게 권한다면 잰더 쇼플리의 스윙을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리듬이 정말 좋다. 특히 다운스윙으로 전환할 때의 여유는 최고다. 쇼플리가 의도적으로 만든게 아니고 타고난 것 같다. 디오픈 예선에서 잘해서 본선에서 이 선수들과 같이 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골프는 100명이 나가서 한 명이 1등하는 비정한 스포츠다. 오랜 시간 버티는 비결을 무엇일까?
“골프는 사실 매일 어떤 부분에서든 배울 수 있는 스포츠다. 절대 정복할 수 없다. 어느정도 실수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골프고, 끝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너무 어려운 스포츠고. 실제 골프를 잘 치려면 독한 마음이 꼭 필요하다. 독기야 말로 골프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마음이 무너질 때가 정말 많은 스포츠여서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이 정말 필요하다. 정말 재미있지만 정말 힘든 스포츠다.”
-외모도 말도 부드러운 편인데.
“솔직히 엄청 독한 편은 아니어서 스스로 독하게 마음먹으려고 한다. 모든 부분에서 조금씩 더 강해진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등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이 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꾸준한 선수이고, 독기가 받쳐줬다면 대 여섯번은 더 우승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골프만큼은 정말 독해질 것이다.”
-취미나 좋아하는 것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액션과 교훈이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순신 장군 나오는 명량, 한산, 노량을 재미있게 보았다. (송영한은 공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이순진 장군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해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좋아하는 음식은 매운 음식이어서 일본에 가면 짬뽕집에 자주 간다.”
-가정과 골프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나
“워낙 외국에 있다보니 아내에게는 미안하다. 제 도리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언제까지 골프 선수로 뛸 생각인가.
“최경주 프로님만큼 오래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경쟁력 있을 때까지는 계속할 것이다.”
-골프에서 가장 잘하는 것은”
“아이언 샷이다. 일본 투어에서도 그린 적중률 1위를 달린다. 비결은 연습량이 많다는 것이다.”
-디오픈에서 먹는 건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아침, 점심은 골프장에서 먹고 저녁은 한국 음식을 먹을 것이다. 라면도 챙겼다. 골프 선수에게도 식단은 중요하지만 그래도 골프 선수만큼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스포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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