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스물 세 살이던 호주의 애덤 스콧(1980년 7월16일생)은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골프계에 본인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2003년 9월 도이체 방크 챔피언십에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우승을 올린 지 6개월 만에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것이다. 스콧은 이후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PGA투어 14승을 올리며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주 50주년을 맞이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14일 개막)을 앞두고, PGA투어를 통해 스콧에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의 의미와 골프 인생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애덤 스콧의 이야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모든 선수가 우승하고 싶어하는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들 그리고 메이저 대회 우승자들과 이야기할 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빼놓을 수 없죠. 2004년, 제 경력 초창기에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TPC 소그래스는 정말 환상적인 코스이며, 출중한 실력의 선수들이 출전하지만 결국 최고의 선수가 우승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추억이 있는 대회이고 항상 그곳에서 경기하는 것이 즐거워요. 20년 만에 다시 우승한다면 환상적일 것 같네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다른 메이저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회입니다. 아일랜드 그린으로 유명한 17번 홀(파3)은 골프계에서 악명 높으며, 수년 동안 드라마 같은 명장면들이 펼쳐졌죠. 매년 TPC 소그래스를 방문하는 것은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나라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만큼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PGA 투어 선수들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대한 진정한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골프는 여러 방면에서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지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대회장은 수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훌륭한 대회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회 중 하나입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골프를 쳤지만, 그날의 우승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네요. 마지막 홀에서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제 경력에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은 큰 의미를 주었어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PGA 투어에서 가장 큰 대회 중 하나입니다. 제가 23살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고,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우승했다는 것은 제 골프 경력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따라오는 혜택들은 많습니다. 우승을 위해서는 약간의 운도 필요합니다. 당시 3라운드에 저는 어니 엘스(남아공)와 같은 조에 있었는데, 그와 함께 경기를 하면서 안정감을 찾는 데 큰 도움을 받았죠. 비록 최종 라운드에서는 어니와 함께 경기 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이런 큰 대회에서 좋은 경기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어니 덕분에 3라운드부터 큰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11번과 12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 흐름이 꽤 좋았어요. 14번 홀쯤,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이 클럽하우스에 점수를 적어놓은 것을 볼 기회가 있었고, 그때 2타차로 선두에 있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 이후 갑자기 흐름이 안 좋게 흘러갔어요. 14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고 ‘이제 1타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겠구나! ‘부담감이 커지기 시작했죠. 16번 홀(파5)에서 피치 샷이 잘 들어갔지만, 퍼트에 굉장한 압박감을 느꼈어요. 이 퍼트를 성공해야 안전하게 끌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안타깝게도 버디 기회를 놓쳤고, 이 압박감은 17번과 18번 홀까지 이어졌어요.
17번 홀의 아일랜드 그린으로 공을 올리려고 할 때 웨지샷밖에 답이 없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고, 공은 그린 중앙의 안전한 곳에 떨어졌어요. 파로만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졌고, 18번 홀에서도 좋은 경기로 이어지길 원했죠.
대회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을 때면, 우승에 대한 생각이나 우승 뒤에 찾아올 많은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저는 대회 기간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펼치다가, 18번 홀에서 그린까지의 거리가 애매하게 남은 바람에 거기에서부터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6번 아이언 샷이 훅이 났고, 결국 해저드에 빠졌었죠.
이후 4번째 피치 샷에서 너무 긴장을 했어요. 당시, 피치 샷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 주 내내 열심히 연습했었죠. 어떻게든 마음을 편히 먹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샷을 쳤는데 생각보다 잘 맞았습니다. 그 이후 마지막 퍼트에는 긴장을 덜 한 것 같아요. 남은 퍼트에 확신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침착하게 퍼트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손이 떨릴 정도로 엄청나게 긴장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제 경력 상 가장 큰 대회에서 우승할 기회였으니까요. 결국 12언더파 276타의 기록으로 파드리그 해링턴을 1타차로 앞서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미국에 집이 따로 있지 않아서, 우승 이후 일요일 저녁 늦게 올랜도에 있는 스튜어트 애플비(호주)의 집으로 갔습니다. 딱히 성대한 축하 파티를 가지진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저는 그런 분위기를 조금은 기대한 것 같아요. 약간은 아쉬움이 남네요. 지금은 제 아내가 된 그 당시 여자친구와 부치 하먼 코치도 함께 한 자리였어요. 제 경력에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우승이고, 지금 이렇게 추억할 수 있어 아주 기쁩니다. 20년 전에는 성대한 파티를 하지 못했으니, 이번에 다시 우승을 한다면 모두가 함께하는 엄청난 파티를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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