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 차인 리디아 고(26)와 이민지(27)는 어린 시절부터 숱한 경쟁을 벌여 맞수처럼 비친다. 리디아 고는 뉴질랜드, 이민지는 호주 대표로 일대일로 맞붙는 매치플레이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절친이다. 한두 살 차이는 편하게 친구가 되는 문화권에서 자라 한국 같은 언니 동생 사이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리디아 고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아들인 정준 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준 친구 몇 명 가운데 이민지도 있었다. 이민지는 한국에서 열린 리디아 고 결혼식에도 참가했다.
“100명이 출전해 챔피언 1명을 가리는 골프 종목의 특성상 내가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분명하지만 서로 좋은 성적을 올린 친구에게 축하 연락을 하면서 점점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둘은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우승 상금 2억7000만원)에 나란히 참가했다. 이들은 후원사도 같은 하나금융그룹이다.
한국에서 고보경이란 이름으로 지내다 여섯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간 리디아 고와 호주에서 한국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이름을 쓰는 이민지는 한국의 김효주(28)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세계 여자골프를 쥐락펴락했다. LPGA투어에서 리디아 고 19승(메이저 2승), 이민지 9승(메이저 2승), 김효주 5승(메이저 1승) 등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한국 선수들은 25세를 분기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너무 골프에만 매달려 번 아웃 신드롬(탈진 증후군)에 빠지는 것도 원인이다. KLPGA 투어가 빠르게 성장하고 한국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꺼리면서 LPGA 투어에 대한 한국의 지배력은 급속히 약해졌다. 올해 5개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 선수 우승이 하나도 없고 2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교포 선수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달 초 LPGA 투어에서 우승한 이민지는 25세 이후 메이저 2승(2021 에비앙 챔피언십·2022 US여자오픈)을 포함해 4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이민지는 “어린 시절에는 비리비리했는데 체계적으로 근육운동을 하면서 거리가 늘고 골프가 쉬워졌다”고 했다. DP월드투어에서 2승을 올린 이민지의 동생 이민우(25)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누나만큼 골프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하면 나는 충동적으로 보일 정도”라고 귀띔했다.
리디아 고는 지난해 3승을 거두며 LPGA투어 상금왕·올해의 선수·최저타수상 3관왕에 올랐다. 리디아 고는 “남편을 만나면서 골프 말고도 인생에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게 큰 복”이라며 “앞으로도 골프와 인생의 균형을 잘 맞춰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민지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국가의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 LPGA에 가세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며 “해외 무대 도전이 어려운 점은 많지만 내가 한국에서 1년에 3~4승씩 거두는 선수라면 LPGA 투어에 도전하고 싶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에도 박인비와 신지애처럼 멋진 골프 인생을 사는 언니들이 많은 만큼 한국 골프 문화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회는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AGLF)’이 주관하는 ‘레이디스 아시안 투어’(LAT) 시리즈의 하나로 진행돼 일본,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국가 선수들도 참가했다.
이들 중 최연장자는 일본투어에서 23승을 거둔 요코미네 사쿠라(38)로 두 살배기 아들을 두었다. 이들은 언제까지 골프를 하고 싶을까? 리디아 고는 “어릴 때부터 서른 살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으로선 변함없다”고 했고, 이민지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골프를 오래도록 할 것 같다”고 했다.
세계 7위인 이민지와 세계 10위인 리디아 고는 내년 파리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메달 후보들이다. 리디아 고와 이민지는 “한국 팬들이 한국 국적 선수들을 더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한국 음식이고,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각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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