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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안니카 소렌스탐이 7월 6일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제78회 US 여자 오픈 1라운드 11번 홀에서 세컨샷을 날리고 있다. 사진 AFP연합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유일하게 59타를 기록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3·스웨덴)은 54타가 충분히 가능한 꿈이라고 설파했다.


소렌스탐은 2001년 3월 1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문 밸리CC(파 72)에서 열린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2라운드에서 8연속 버디를 포함해 총 13개 버디를 잡으며 13언더파 59타를 쳤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LPGA 18홀 최소타 신기록이다.


소렌스탐이 주장하는 54타는 파 72짜리 코스의 18개 모든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 코스를 여러 번 돌다 보면 언젠가 모든 홀에서 버디를 잡을 때가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한 라운드에 모든 홀에서 버디를 잡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2002년 미국 신문 USA투데이는 PGA투어와 LPGA투어에서 한 라운드 최소 타수가 기록될 것이란 전망의 특집 기사를 내놓았었다. 소렌스탐은 확신에 찬 예언을 덧붙였다.


당시 골프계가 최소 타 기록 희망에 부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장비의 발달이다. 드라이버 소재가 감나무에서 메탈을 거쳐 티타늄으로 바뀌었다. 골프 클럽 샤프트의 강도, 헤드의 무게중심, 로프트 각 변경 등 과학적 설계가 뒤따르면서 드라이브 거리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클럽 제조 기술과 장타에 필요한 최적 조건을 알려주는 테스트 장비의 발달로 투어 정상급 선수들이 예전엔 불가능할 것 같았던 300야드 이상을 날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기하는 데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코스 상태도 선수들의 타수를 낮추게 하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여기에 장타와 세기, 강력한 정신력을 겸비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면서 골프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져 점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우즈는 당시 PGA투어의 파 5홀을 거의 모두 2온을 해 이글이나 버디를 잡는 획기적인 경기 방식을 선보인 게임 체인저였다.


하지만 ‘58타’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14년 후였다. ‘8자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53·미국)이 2016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12언더파 58타를 작성했다. 1923년 PGA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나온 한 라운드 58타 기록이었다. 퓨릭은 당시 이글 1개와 버디 10개를 잡았다. 이후 ‘미스터(Mr) 58’이라 불린 퓨릭은 흉내 내기도 힘든 특이한 스윙의 소유자였지만 페어웨이 적중률이 높아 ‘미스터 페어웨이’란 애칭으로도 불렸다. 그의 스윙을 놓고 유명 골프 해설가 데이비드 페허티는 “문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브라이슨 디섐보가 8월 7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에 있는 올드 화이트 앳 그린브라이어에서 열린 LIV 골프 리그 10차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12언더파 58타로 우승을 차지한 후 환호하고 있다. ‘꿈의 기록’이라고 불리는 58타 우승이 리브 대회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AFP연합

이후 58타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2010년 이사카와 료(28·일본)와 2021년 김성현(25)이 각각 한 번씩 쳤다. 그리고 8월 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의 올드 화이트 앳 그린브라이어(파70)에서 열린 LIV 골프 10차 대회 최종 3라운드에서 브라이슨 디섐보(30·미국)가 버디 13개, 보기 1개로 12언더파 58타를 치며 주요 투어 네 번째 58타를 기록했다. 2001년 PGA 3부 투어 격인 캐나다투어에서 제이슨 본(50·미국)이, 2016년 PGA 2부 투어 웹닷컴투어에서 스테판 얘거(34·독일), 2021년 유러피언프로골프 2부 투어인 챌린지 투어에서 알레한드로 델 레이(25·스페인)가 58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 2부 스릭슨 투어 16회 대회 예선에서 허성훈이 58타를 친 게 유일한 사례지만, 공식 대회는 아니었다. 프로 골프 18홀 최소 타는 2019년 유럽 3부 투어인 알프스 투어 케르비노 오픈에서 데이비드 캐리(27·아일랜드)가 친 57타로 알려졌다. PGA투어에서 59타는 11번 나왔다.

디섐보는 꿈의 54타를 현실로 만들어 줄 신체 개조 실험에 도전했던 인물이다. 그는 ‘미친 과학자’ ‘헐크’란 별명으로 불린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수학과 물리학 지식을 골프에 적용한다. 어느 클럽이든 스윙 자세를 똑같이 하는 게 좋다며 모든 아이언 클럽 길이를 똑같이 맞춰 쓴다. 선수와 캐디가 코스 공략을 위해 사용하는 야디지북의 홀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며 제도용 컴퍼스를 사용하다 제재받은 적도 있다. 2019년 골프 규칙이 개정돼 깃대를 홀에 꽂은 채 퍼팅할 수 있도록 하자, 깃대 재질에 따른 반발계수를 계산해 선택적으로 깃대를 꽂거나 뺀 채 퍼팅을 했다.


그의 신체 개조 실험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2019년 말부터 4개월 동안 20㎏ 가까이 체중을 늘려 400야드 초장타에 도전했다. 하루 6~8잔의 단백질 셰이크를 포함해 5500㎉를 섭취하며 110㎏ 몸무게(키 185㎝)의 ‘헐크’로 변신했다. 그는 400야드 안팎의 파 4홀에서 티샷 한 번에 공을 그린에 올리거나 그린 근처에 떨어뜨려 웨지로 공략하면 늘 우승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 4홀도 원온이 가능하면 파 5홀 2온은 기본이 된다. 그러면 수많은 도박사가 도박에 참가해도 늘 돈을 따는 것은 도박판을 운영하는 ‘하우스’인 것처럼, 자신도 골프 게임의 하우스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구상이었다.


디섐보의 ‘벌크업 혁명’을 통한 ‘하우스론’은 거의 모든 홀에서 버디 아니면 이글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소렌스탐이 매홀 버디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몸의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PGA투어 최장타자가 된 그는 2020년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을 포함해 2승, 2021년 1승을 거두며 꿈에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디섐보는 지난해 봄 손목 수술을 받았고 현기증으로 얼마 뒤 전신 정밀검사를 받았다. 소화관 염증 수치가 크게 높아졌고 콧속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힘겹게 찌웠던 살을 빼기 시작했다. 지난해 식단을 관리하며 한 달 만에 몸무게를 8㎏ 이상 줄였다. 올해 2월엔 ‘장타 포기 선언’을 했다. 현재 몸무게는 95㎏ 으로 벌크업 이전 88㎏에 가까워졌다.


날씬해졌지만 비거리는 크게 줄지 않았다. 디섐보는 드라이버로 350야드를 가볍게 보내고, 7번 아이언으로 200야드 안팎을 친다. 여전히 최정상급 장타 능력이다. ‘날씬한 헐크’가 된 것이다.


벌크업 못지않게 클럽 헤드 스피드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 효과 덕분이다. 디섐보는 58타를 치고는 “드라이버를 똑바로 멀리 치고 퍼트를 집어넣는다면 언제든 우승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말만 바꾸면 언제든 50대 타수를 칠 수 있고 54타를 치는 날도 가능할 것이다. 꿈의 54타로 가는 길 하나를 디섐보가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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