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골프로부터 온 위대한 뉴스. 골프의 멋진 세계를 위한 크고 아름답고 멋진 계약.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골프 역사상 가장 슬픈 날. PGA투어는 골프의 미래를 팔았다”(PGA투어 선수 출신 골프 애널리스트 브랜던 챔플리)
7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 투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가 “골프라는 종목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획기적인 합의를 이뤘다”며 전격 공동 성명을 내자 세계 골프계는 크게 술렁였다. 제이 모너핸 PGA 투어 커미셔너는 “최근 2년간 혼란을 겪은 이후 오늘은 우리가 모두 사랑하는 골프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 혁신적인 파트너십은 DP 월드투어, LIV와 결합을 통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직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LIV 골프를 출범한 이후 LIV 골프 가담 선수들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PGA투어 출전 자격을 박탈했던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가 갑자기 동반자 선언을 한 것이다.
PGA 투어와 PIF, DP월드투어 세 단체가 발표한 합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 /EPA 연합뉴스
공동 선언문은 “LIV 골프를 포함한 PIF의 골프 관련 사업적 권리를 PGA 투어와 DP 월드투어의 사업 권리와 결합해 새로운 공동 소유 영리 법인으로 이전한다. 새 법인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의 경쟁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단 올해 PGA 투어와 LIV 골프의 남은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새로운 공동 소유 영리 법인의 구성 및 운영의 중심은 PGA투어가 다수를 이루지만 PIF가 독점적 투자자가 된다. 제이 모너핸 PGA 커미셔너가 새 법인의 최고 경영자를 맡고,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가 회장에 오르기로 했다.
LIV골프 출범을 주도한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PIF가 사실상 세계 골프를 인수합병하는 셈이 된다. 공동 선언문은 “PIF가 새로운 법인의 성장과 성공을 촉진하기 위해 자본 투자를 할 예정이다.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새 법인은 사업을 성장시키고, 더 많은 팬의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셋째, LIV골프에 가담한 선수들이 원한다면 PGA투어 및 DP월드투어 복귀가 가능해진다. PGA 투어와 DP월드투어, LIV 골프는 진행중인 소송을 모두 취하한다.
공동 선언문은 “2023시즌 종료 후 PGA 투어 또는 DP 월드투어 회원 자격 재신청을 희망하는 선수들을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과정을 통해 협력하겠다”고 천명했다.
세 단체는 “세부적인 내용들은 정해지는 대로 다시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는 “세부 내용 합의는 몇주 걸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갑자기 동반자 선언을 한 PGA투어와 LIV골프의 전격 합의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와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는 미국 방송 CNBC와 인터뷰에서 “영국 런던에서 두 차례 식사를 하고 골프 라운드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5월 26일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대회 첫날 5번 홀에서 더스틴 존슨이 티오프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AFP 연합뉴스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서로 강경대응 일변도였던 양측 관계가 급선회한 것을 놓고 미국이 중국의 석유 위안화 결제에 동조하고 미국 정책에 반기를 드는 사우디아라비아 끌어안기에 나선 외교적 영향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다. 2018년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 소속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된 사건의 배후로 미국 정보 당국은 빈 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LIV의 출범을 미국 대부분 언론은 빈 살만이 골프를 통해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 전략을 편다고 해석했다. PGA투어도 이런 입장에서 비판을 견지해왔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실상 골프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한 날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아리비아에 도착해 사흘간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와 회동하고 미·걸프협력회의(GCC) 장관급 회의에 참여할 예정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등 언론들은 블링컨 장관의 사우디 방문을 중동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환으로 분석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정상화했고, 석유의 위안화 결제에도 동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흔들리는 국제 유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미국의 바람에 역행해 지난 4일 또다시 감산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고 있다./로이터 뉴스1
미국이 본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달래기에 나서면서 사실상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LIV 골프에 선물을 안겼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번 조치로 미켈슨과 브룩스 켑카, 브라이슨 디섐보 등 수억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LIV골프로 넘어갔던 선수들은 꿩도 먹고 알도 먹게 됐다.
반면 타이거 우즈(미국)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LIV의 파격적인 제안을 거부하고 PGA투어 사수를 결정했던 선수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 LIV골프 출범을 주도한 LIV골프 CEO 그레그 노먼(호주)은 세 단체의 합의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고, 새로운 단체에서도 배제될 것으로 알려져 자칫 ‘토사구팽’ 신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는 2021년 10월 LIV 골프를 설립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기존 PGA 투어와 DP 월드투어가 양분하던 세계 남자 골프계를 흔든데 이어 전격 합의로 새로운 단체를 주도하게 되면서 PGA투어와 전쟁에서 승리한 셈이 됐다.
미국의 가치, 골프의 가치를 표방하며 LIV골프와 LIV 골프 가담 선수들을 적대시해온 PGA투어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LIV골프의 미국내 개최를 반대하며 시위를 해온 9·11 테러 희생자들 가족들은 PGA투어를 직설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LIV 골프의 자금원인 사우디아라비아가 9·11 테러를 주도했다고 본다.
9·11 유족 연합 회장을 맡고 있는 테리 스트라다는 “제이 모너핸은 지난해 여름 9·11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얘기하며 LIV 골프로 옮긴 골퍼들의 사과를 요구했다”면서 “PGA투어 리더들은 자신들의 위선과 탐욕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직격탄을 날렸다. 스트라다는 “우리는 모너핸과 PGA투어에게 배신당했다”면서 “우리에게 보인 그들의 관심은 단순히 돈을 추구하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결코 위대한 골프 게임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테러를 주도한 사우디가 모든 프로골프의 자금을 조달하게 됐다.이제 미국과 전세계는 사우디가 수십억 달러를 테러 자금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잊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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