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김주형은 올해 8월 PGA투어 비회원 신분으로 참가한 윈덤챔피언십에서 2000년대생으로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승리를 올린 데 이어 10월 10일(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TPC 서머린(파71)에서 끝난 PGA투어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2개월 만에 2승째를 올렸다. 김주형은 대회 최저타 타이기록인 합계 24언더파 260타를 기록하며 공동 2위 패트릭 캔틀레이와 매슈 네스미스(이상 미국)를 3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 상금 144만달러(약 20억원)를 거머쥐었다.
김주형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이후 26년 만에 21세 이전에 PGA투어에서 2승을 올린 선수가 됐다. 우즈는 1996년 이번 대회의 전신인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 2주 뒤 월트디즈니 월드 올드모빌 클래식에서 2승째를 올렸다. 당시 우즈의 나이는 20세 9개월이었다. 김주형은 20세 3개월이어서 우즈보다 6개월 정도 빨리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32년 랠프 굴달(미국)이 21세 2개월에 2승을 올린 게 역대 최연소다. 김주형은 대회 4라운드에서 2020-2021년 시즌 페덱스컵 챔피언으로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30세의 캔틀레이와 매치플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대결 끝에 승리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출발해 17번 홀까지 동타를 기록하다 캔틀레이가 마지막 홀에서 티샷을 사막 지역으로 치는 실수에 이어 두 번째 샷 실수,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도 워터 해저드에 빠트리면서 승부가 갈렸다.
메이저 대회 15승을 포함해 PGA투어 최다승 타이인 82승을 거둔 우즈에게 견주는 것은 성급해 보이는데도, 현지 미디어는 ‘골프 황제’ 우즈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김주형의 실력과 스타성에 주목했다. PGA투어 홈페이지는 ‘골프 스타 톰 킴,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타이거 우즈의 젊은 시절을 비추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톰 킴은 김주형이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토머스 더 트레인(토머스와 친구들)’을 좋아하면서 자신에게 붙인 영어 이름이다.
김주형은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나흘간 단 한 개의 보기 없이 24타를 줄이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PGA투어에서 72홀 노보기 우승 기록이 나온 것은 2019년 윈덤챔피언십에서 JT 포스턴(미국) 이후 3년 만이며 역대 세 번째다. 1974년 그레이터 뉴올리언스 오픈에서 리 트레비노가 처음 노보기 우승 기록을 세웠다.
김주형은 그동안 한국이 배출한 선수들과는 결이 다르다. 김주형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한다. 어릴 때 호주와 필리핀에서 살아 영어에도 막힘이 없다. 중요한 것은 표현력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나 ‘한국 골프의 개척자’ 최경주는 말솜씨도 뛰어나다. 개인 스포츠이고 프로 스포츠여서 인터뷰 기회가 많은 점도 있겠지만, 표현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실력도 뛰어난 편이다.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도 그렇다. 골프는 클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1번 홀 티잉 구역에서 출발해 18번 홀 그린의 홀까지 항해하는 운동이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루트를 개척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프로 대회에서는 72홀을 돌게 된다.
김주형은 상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평소 습관 때문일 것이다. 첫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에게 PGA투어는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PGA투어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만회 능력이 뛰어나다. 예선 통과 컷도 대부분 언더파라 처음부터 잘 쳐야 한다. 우승도 (윈덤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처럼) 운 좋게 61타는 쳐야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PGA투어는 모든 샷이 다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김주형은 지난 9월에 열린 세계연합 팀과 미국 팀의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주형이 김시우와 짝을 이뤄 캔틀레이-잰더 쇼플리와 대결한 포볼(2인 1조로 각자의 공으로 경기하고 더 좋은 스코어를 팀 스코어로 삼는 방식) 경기는 2022년 대회의 상징적인 한 장면으로 꼽힌다. 마지막 18번 홀(파4). 홀까지 239야드를 남기고 김주형이 2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이 멋진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홀 3m 옆에 멈췄다. 그리고 쉽지 않은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의 버디 퍼팅에 성공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타이거 우즈처럼 포효했다. 모자를 내던지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김주형을 향해 함께 승리를 합작한 김시우를 비롯해 세계연합 팀 동료가 달려와 뜨겁게 포옹했다. PGA투어 소셜 미디어는 이런 김주형의 영상에 ‘스타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PGA투어는 김주형의 우즈처럼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우즈의 젊은 시절 모습과 비교하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PGA투어는 김주형에게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며 ‘세계연합 팀의 CEO(Chief Energy Officer·최고 활력 책임자)’란 별명을 붙였다.
김주형은 기존 한국 선수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을 거치며 잡초처럼 살아남은 ‘골프 노마드(유목민)’다.
골프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집이다. 네 살 때부터 티칭 프로 아버지를 흉내 내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어서 열여섯 살에 처음 자신의 맞춤 골프 클럽이 생길 때까지 여기저기서 얻은 클럽을 모아 백을 꾸려 대회에 나갔다. 다섯 나라를 돌며 한국어, 영어, 필리핀 타갈로그어 등 3개 국어를 할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다. 임성재와 김시우, 이경훈 등 한국 형들은 물론이고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잰더 쇼플리 등 외국 형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쇼트게임과 퍼팅 비법 등을 배운다.
역대 한국인 최연소(20세 1개월 18일) PGA투어 우승을 차지한 김주형은 2013년 조던 스피스(존 디어 클래식·19세 10개월 14일)에 이어 둘째로 어린 나이에 우승자가 됐다. 그는 첫 승 기록도 1996년 10월 6일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처음 우승한 우즈(당시 20세 9개월 6일)보다 8개월 빨랐다.
김주형은 골프의 세계 경쟁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주니어 시절부터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지독하게 훈련하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골프에도 좋은 자극제다.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우승한 김주형에게 ‘1996년 타이거 우즈 이후에 21세 이전에 2승을 한 선수가 되었는데 어땠는가?’란 질문이 나왔다. 그는 “몇 달 전만 해도 난 여기에 정식 회원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두 번째 우승을 하고 여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우상인 우즈의 기록과 비교가 되는 나 자신이 믿을 수가 없다. 정말 영광이고, 나의 꿈이 현실이 되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김주형의 장점은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우상 우즈처럼 되는 것이다. 2승을 거둔 김주형은 1승을 거뒀을 때와 비슷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직 가다듬어야 할 것이 많다. 아직 약점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다. 난 여기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그간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항상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모든 선수가 정말 다 열심히 한다. 그리고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있고, 난 아직 그들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 저스틴 토머스 같은 선수들과 비교하면 난 이제 시작이다. 난 그저 열심히 연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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