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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의날 기념식서 무궁화장 받은 재일교포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


어머니에 이어 27년만에 무궁화 훈장을 받은 재일교포 최종태 야마젠 그룹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일본 정·재계 친구들이 제게 귀화를 권할 때마다 저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했어요.”


5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사업가 최종태(69) 야마젠 그룹 회장이 재일교포의 지위 향상과 한·일 관계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최고 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80년대 재일교포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에서 50만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제출했던 그는 그후 재일교포의 지방참정권 운동에도 나섰다. 하지만 “언제나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라는 어머니 뜻을 조금이라도 따르고 싶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최 회장과 그의 어머니는 재일교포와 한국이 만든 ‘기적의 역사’를 상징한다. 모친 권병우 여사는 재일 대한부인회의 대모이자 재일대한민국민단의 중심 인물이었다. 1988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의 화장실 개조 운동을 지원했고, IMF 시절이던 1998년 ‘나라 살리는 통장 갖기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1994년 아들과 마찬가지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권 여사는 2007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 회장은 “‘타인에게 은혜를 입거든 돌에 새겨 잊지 말고, 타인에게 베푼 것은 잊어버리라’고 했던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감개무량해했다.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그는 유학생 출신으로 운수회사를 일으킨 고 최맹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의 요절로 장남 몫을 하던 그는 중학교 졸업식 다음 날 아버지를 여의었다. 삶이 바뀐 건 고교 1학년 때다. 축구 명문 팀 주전 선수였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 전국체전 출전이 무산됐다. 실망한 그에게 감독은 “귀화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귀화 대신 재일교포 대표로 대한민국 전국체전에 참가했다. “서울운동장에서 처음 애국가를 듣고 가사도 모르는데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부모가 키운 히라야마 운수를 바탕으로 ‘갤러그’ 게임으로 큰돈을 번 그는 무역과 부동산, 파친코 등으로 사업을 키우며 오사카 재계 거물로 성장했다. 2010년 오사카 부근에 1500기를 안장할 수 있는 ‘망향의 동산’을 만들었다. “나는 부모님을 천안 ‘망향의 동산’에 모실 수 있었지만, 거기에 묻히고 싶어도 못 가는 교포들을 위해서”였다.


그는 구옥희를 비롯해 김종덕⋅최경주⋅양용은 등 일본에 진출한 골퍼들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일본의 한 골프 주간지는 “고베의 최씨 집은 한국 골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며 그를 “일본 속 골프 한류(韓流)를 만든 사람”으로 소개했다. 2013년엔 일본 돗토리현의 다이센 골프클럽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대한골프협회 국제담당 이사인 그는 201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아마추어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이곳에서 열며 스포츠를 통한 교류와 화합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일본여자 아마추어 선수권도 개최했다.


그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 등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파이프 역할을 하고 있다. “이웃 나라가 싫다고 이사를 갈 수는 없지 않느냐”며 “미래를 같이 개척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정치인들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 교포 사회의 새로운 단합도 강조했다. “현재 민단 회원은 35만명, 1989년 이후 일본에 이주한 ‘뉴커머’인 한인회 회원은 17만여 명입니다. 일본 사회에 뿌리 내린 민단과 비교적 젊은 세대가 많은 한인회가 힘을 합쳐 한국인임을 자랑하는 재일교포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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