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추락했던 골프장 회원권 시장은 코로나 시대와 함께 폭발적인 상승세로 돌아섰다. 부킹 잘되고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초고가 회원권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제주를 비롯해다양한 지역에 훈풍이 불었다. 사진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CJ컵이 열린 제주 나인브릿지. 사진 민학수 기자 |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요즘 골프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난다. 새해 들어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골프장 회원권 시장 덕분이다.
1월 26일 그가 보유한 이스트밸리 회원권이 그 전주에 비해 2000만원 오른 14억5000만원의 시세를 기록했다. 이렇게 1~2주면 몇천만원씩 값이 뛰어오른 게 6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6월 9억1000만원이었던 회원권이 5억4000만원이나 오른 것이다. “좋아하는 골프장에서 골프는 골프대로 치고 돈까지 버는 것 같아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했다.
동학 개미가 코로나 사태라는 미증유의 악재 속에서도 한국 증시의 3000시대를 견인한 가운데 골프장 회원권 시장은 1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황제 회원권 시대’를 다시 맞고 있다. 지난해 최대로 상승한 일부 초고가 회원권은 100% 안팎으로 뛰어올랐고, 기타 인기 회원권도 50% 이상 오른 곳이 적지 않다. 이스트밸리는 과거 최고가 각축을 벌이던 남부·가평 베네스트를 뛰어넘어 최고가로 등극하며 관련 종목권의 동반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1월 26일 기준 시세로 남촌 13억원, 남부 12억5000만원이었다.
골프장이 ‘코로나 안전지대’로 인식되면서 뜨겁게 달구어진 회원권 시장은 올해 백신이 보급돼 코로나가 주춤하면 어떻게 될까. 해외 골프 여행이 가능해지면 올랐던 회원권 값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회원권 애널리스트인 에이스골프 이현균 본부장과 함께 급등락을 거듭해온 한국 회원권 시장의 흐름을 살펴본다.
부킹 잘되는 초고가 회원권 중심 상승세
앞에 말한 A씨가 골프장 회원권을 사서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남부, 렉스필드와 함께 ‘곤지암 3총사’로 불리던 이스트밸리 회원권을 그가 산 것은 10년 전인 2011년 11월이었다. 당시 7억9500만원에 샀는데 ‘바닥을 친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고 한다. 상당수 골프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8년 상반기 최고 시세를 자랑했다. 2008년 6월 남부 회원권이 ‘20억의 벽’마저 돌파해 21억5000만원을 찍었다. 이스트밸리는 최대 16억2500만원(2007년 9월)까지 뛰었고 남촌도 2008년 17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렉스필드, 레이크사이드, 가평 베네스트 등 6곳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당시 10억원을 넘기며 ‘초고가 회원권’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자 법인들이 내놓는 회원권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반 토막이 나기 시작했다. A씨를 비롯해 많은 이가 바닥이라고 생각한 타이밍은 진짜 바닥이 아니었다. A씨가 산 이스트밸리 회원권도 2014년 12월 6억2000만원까지 떨어져 속병을 앓았다. 2018년 2월 남부 회원권은 6억1000만원으로 최고가 대비 무려 15억4000만원이나 떨어졌다. 17억2000만원이었던 남촌은 2014년 4억6000만원에 거래됐고, 렉스필드는 13억4500만원에서 2014년 2월 3억500만원까지 10억원 이상 하락했다. 황제 회원권들의 초라한 추락이었다.
주식 지수처럼 만든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종합 회원권지수(ACEPI)를 보면 지난 20년간 골프장 회원권 시장이 얼마나 요동쳤는지 알 수 있다. 에이스 회원권 지수는 2005년 1월 1일의 회원권 시세를 기준(1000P)으로 하여 매일의 호가 등락을 표시한 회원권 시세 표준화 지수다. 2008년 3월 18일 사상 최고인 1715.3P를 찍었던 회원권 지수는 2011년 8월 12일 999.4P로 1000P를 이탈했다. 2014년 12월 17일 최저점인 681.8P까지 떨어졌다.
오랫동안 바닥을 헤매던 회원권 시세가 반등한 것은 2019년부터였다. 10여 년간의 혹한기에 대대적인 골프장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60여 곳의 회원제 골프장이 문을 닫거나 대중제로 전환되면서 회원권이 줄어들었다. 공급은 줄고 가격이 내려간 사이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2030세대 골프인구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겹치면서 회원권 수요가 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회원권 애널리스트인 에이스골프 이현균 본부장. 사진 에이스골프대표적인 회원권 애널리스트인 에이스골프 이현균 본부장. 사진 에이스골프 |
10억 이상 금융 자산가 56%, 회원권 소유
지난해 골프장 회원권 시세를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세 개의 화살이었다. 골프장 회원권이 오름세로 전환하는 시기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골프 업계는 제2의 빙하기를 우려했다. 하지만 골프가 바이러스 접점이 적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에 부합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업황이 급속도로 개선됐다. 해외 골프투어가 불가능해지면서 부킹 전쟁이 빚어졌고 회원권 수요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동자금이 급증하면서 투자 수요가 오랜만에 시장으로 유입됐다.
에이스 회원권 지수는 2020년 8월 11일 1007.3P로 상승하면서 9년 만에 1000고지를 회복했다. 부킹 여부에 따라 양극화의 길을 걸었다. 회원 수가 많은 중저가 회원권은 어차피 부킹이 안 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소폭 상승에 그쳤지만 부킹이 확실한 초고가 회원권을 중심으로 구입이 몰린 것이다. 지난해 가격이 108% 뛴 남촌을 비롯한 초고가 회원권은 평균 55.7%가 올랐지만 고가와 중저가대 종목들은 18~19%가량 상승했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가에서 블루칩으로 분류되는 회원권 매입을 적극 추천하고 골프회원권에 대한 재평가를 담은 보고서들이 나오면서 회원권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담는 자산가들이 늘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지난해 10월 28일 ‘순수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자산가가 약 35만4000명이며 이들 중 56.3%가 골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코로나 진정되면 ‘옥석 가리기’ 벌어질 듯
에이스골프 이현균 본부장은 “2021년 시장은 상고하저형의 과거 패턴과 비슷할 수 있다”며 “코로나 사태의 파급 효과를 지켜봐야 할 듯하지만 에이스 회원권 지수는 2020년 수준을 웃돌아 1050~1150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1월 들어서도 회원권 시장이 강세장을 유지하는 데는 지난해 상대적으로 주춤했던 법인들의 수요가 초고가 및 고가 회원권 시세를 계속 상승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로나 속에서도 호황을 거둔 ‘언택트 비즈니스’ 기업들이 연말 연초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하반기 들어 코로나가 진정 국면으로 바뀌고 해외여행이 시작되면 개별 회원권 이슈에 따라 옥석 가리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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