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타차 뒤집은 김아림, 비장의 무기는 3번 우드
마지막 3개 홀서 버디 잡아 US여자오픈 역전 우승… 상금 11억
‘모 아니면 도’ 였지만… 흔들리던 티샷 정확성 높이려
지난 6월부터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하이브리드로 연습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며 기뻐하는 김아림. /AP 연합뉴스 |
김아림(25)은 천하를 거머쥘 공룡을 갖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다진 175㎝, 70㎏의 당당한 체격에서 힘껏 때리면 300야드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장타 능력이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비교 불가”라는 평을 듣는 그는 남자 선수들과 백 티에서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하기도 한다.
‘필드의 여전사’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장타 여왕’이란 애칭까지 지닌 김아림은 올해 한국여자골프 최고 기대주로 꼽혔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1승씩 거둔 그가 올해 국내 골프를 평정하고 미국 진출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티샷이 ‘모 아니면 도’였다. 티샷을 페어웨이에 떨어뜨리면 쉽게 버디를 잡았지만, 비뚜로 가면 파를 지키기도 어려웠다. 1승도 못 거두고 상금 순위 21위에 머문 그는 지난 6월부터 ‘공룡 길들이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오버 스윙을 줄이고 굳이 드라이버를 잡지 않아도 되는 곳에선 다른 선수 드라이버보다 멀리 나가는 3번 우드(평균 비거리 250m)나 하이브리드 클럽 19도(평균 210m)를 빼들기로 했다. 이런 김아림이 1998년 박세리의 맨발 투혼 이후 한국 여자골프의 성배(聖杯)로 꼽히는 US여자오픈에 처음 출전해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길들인 장타 능력, 공룡이 그 앞장을 섰다.
15일(한국 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제75회 US여자오픈 4라운드. 악천후로 현지 시각 월요일에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김아림의 역전극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김아림은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시부노 히나코(일본)에 5타 뒤진 채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다. 마지막 3홀을 남겼을 때까지도 선두에 2타 뒤져 있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마지막 3연속 버디를 터뜨렸다. 스코어 카드를 제출하고 30분이나 기다리던 김아림은 이날 1타 차 공동 2위를 차지한 에이미 올슨의 둘째 샷이 이글로 연결되지 않아 우승이 확정되자 처음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지난해 우승자 이정은과 김지영이 달려와 샴페인을 뿌리자 환호성을 올리며 동료와 기쁨을 만끽했다. 김아림은 버디 6개, 보기 2개로 4타를 줄이며 합계 3언더파 281타로 상금 100만달러(약 10억9000만원)와 내년부터 LPGA 투어에서 뛸 자격을 얻었다.
한국 선수가 US여자오픈을 제패한 건 1998년 박세리 이후 11번째다. 박인비가 두 번(2008·2013년) 우승해 10번째 선수가 됐다.
김아림은 코로나 사태로 지역 예선을 치르지 못한 US여자오픈이 대신 애초 세계 50위까지 주던 출전권을 75위(지난 3월 16일 기준)까지 확대하면서 당시 세계 랭킹 70위로 티켓을 얻었다. 대회 전 94위였던 김아림의 세계 랭킹은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64계단 상승한 30위로 뛰어올랐다.
김아림은 지난 6월부터 이재경, 이소영 등을 지도하는 김기환(31) 코치와 스윙을 가다듬었다. 김 코치는 “김아림은 워낙 자신 있게 치는 스타일이지만 강하게 쳐야겠다고 생각하면 오버 스윙에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스웨이 현상이 있었다”며 “마지막 라운드에 나서기 전에도 ‘오버 스윙은 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생각만 갖고 나서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미국 그린 정복한 김아림의 장타는? |
미국 골프 채널은 “김아림이 첫 US여자오픈 출전을 기억에 남을 만한 날로 만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제패했다”고 전했다.
김아림은 “3라운드에서 아쉬운 경기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웬만하면 핀을 보고 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격적으로 하겠다는 각오로 나섰다”고 했다. 그는 장타를 앞세워 전반 3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드라이버와 우드로 고루 티샷한 그의 드라이브 거리는 평균 255.8야드로 4위였다. 승부를 가른 마지막 3홀에서는 드라이버를 잡지 않았다.
파3홀인 16번 홀(파3, 178야드)에선 5번 아이언으로 3m 버디를 이끌었고, 17번 홀(파4, 393야드)에선 하이브리드 티샷에 이어 8번 아이언으로 공을 홀에 붙였다. 18번 홀(파4, 381야드)에선 3번 우드로 티샷한 뒤 피칭 웨지를 잡았다. 김아림은 평소 섬세함과 파워를 모두 갖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을 롤 모델로 삼았다. 그런데 소렌스탐이 미국 골프협회 직원을 통해 영상 통화로 축하 인사를 건네자, 김아림은 환호성을 지르며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며 인사했다.
김아림은 “우승이 확정되고 처음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랑 놀려고 시작한 골프가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모든 게 꿈같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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