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 15언더파 공동 2위… 아시아 선수 최고 성적 낸 비결
임성재(22)는 도대체 처음 나간 마스터스에서 어떻게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공동 2위에 오른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전화를 걸었을 때 임성재는 저녁 식사 후 가족과 함께 오거스타 시내 호텔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임성재는 “첫날부터 행운이 따라주면서 6언더파를 쳐 흐름을 탄 것 같아요”라며 “지난 2주 동안 오거스타 내셔널의 유리알 그린에 대비해 하루 4시간 이상 퍼팅 연습을 한 게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16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4라운드 8번 홀에서 임성재가 퍼트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헤드가 작은 말렛형 퍼터로 바꿨다는 그는 출전 선수 중 최소 퍼트 수(102개)를 기록했다. /AFP 연합뉴스 |
그는 이날 마스터스 4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2개로 3타를 줄여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캐머런 스미스(호주)와 공동 2위에 올랐다. 우승자 더스틴 존슨(미국)과는 5타 차이였다. 2004년 최경주(50)가 기록한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를 넘어섰고 상금으로 다른 대회 우승 상금에 해당하는 101만2000달러(약 11억원)를 받았다.
기분 좋게 맥주 한잔 걸친 듯한 아버지 임지택(55)씨가 왜 그렇게 퍼팅 훈련에 매달렸는지 보충 설명을 했다. 지난 9월 디섐보가 우승한 US오픈에서 임성재는 페어웨이와 그린 적중률은 각각 1위였으나 퍼트수 126개(라운드 당 평균 퍼트 수 31.5개, 공동 51위)로 대회 성적은 22위에 머물렀다.
1~2m 거리만 남으면 벌벌 떨면서 놓친 퍼트만 한 라운드에 6~7개나 됐다고 한다.
임성재는 “온종일 퍼팅만 연습한 날도 여러 날”이라며 “지난주부터 사용한 헤드가 작은 말렛형 퍼터도 예전 일자형 퍼터에 비해 짧은 퍼팅에 효과적이었다”라고 했다. 어드레스 때 왼발에 체중을 더 두고 퍼터 헤드가 낮게 똑바로 다니도록 하는 기본 자세를 가다듬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임성재는 퍼터 헤드가 공 앞뒤로 똑바로 움직이는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최근 퍼팅 부진의 원인으로 오른발에 체중이 많이 실려 퍼터 헤드가 일직선으로 움직이는 스트로크가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그는 퍼터 헤드의 움직임이 아크를 그리면서 공을 맞히는 것은 당겨치거나 밀어치기 쉽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세트업 자세와 헤드의 직선 움직임을 체크할 수 있는 거울 기능이 있는 퍼팅 연습 도구를 활용했다.
예전 불안하던 쇼트 퍼팅이 안정되면서 임성재는 이번 대회 퍼트 수 102개(라운드당 평균 25.5개)로 1위에 올랐다. 나흘 동안 버디 24개를 잡아 2018년 우승자 패트릭 리드(미국)와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랐다.
임성재는 “지난 월요일 생전 처음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연습 라운드를 했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워낙 TV 중계로 많이 봐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입체적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던 임성재에게 오거스타 특유의 굴곡 심한 그린 주변 어프로치샷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고 한다.
/AP 연합뉴스 |
임성재는 세계 1위 더스틴 존슨과 지난 9월 초 투어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맞붙었다. 당시 2오버파를 친 임성재는 6언더파를 친 존슨에게 KO패를 당했다. 도대체 티샷부터 쇼트게임, 퍼팅까지 탄탄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티샷을 30m 더 멀리 치면서도 더 똑바로 보내는 존슨이 부담스러워 이번엔 아예 신경 안 쓰고 내 경기만 집중했어요.”
최종 라운드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사는 나눴지만, 경기 도중 서로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다고 했다.
임성재가 그린 재킷을 입고 챔피언스 디너로 한국 양념 갈비를 대접하는 날은 언제 올까?
“정상급 골퍼에 비하면 저는 아직 2% 이상 부족해요. 이번에 퍼팅과 쇼트게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앞으로는 비거리를 늘려가는 데도 관심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그럼 브라이슨 디섐보처럼 벌크업을? 임성재는 “디섐보의 연구하는 모습을 참 좋아하지만, 같이 쳐보면 장타도 정확성이 있어야 빛난다는 걸 알게 해주더라"라고 했다. 임성재는 이날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지난주 25위에서 7계단 오른 18위를 기록, 첫 세계 랭킹 20위 이내에 진입했다. 아시아 첫 신인상에 이어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가는 그를 보면 한국 선수 최초의 그린 재킷과 세계 1위라는 목표도 언젠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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