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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나 자란 완도는 저녁이 되면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아버지는 미역 양식을 했고,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엔진도 없는 배에 미역을 실을 수 있을 때까지 잔뜩 싣고 나면 바닷물이 갑판까지 찰랑찰랑했다. 매일 저녁 배가 방향을 놓치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노를 저었다. "아버지가 그래요. 경주야 저기, 우리 마을 산꼭대기 양옥집 불빛 보이지. 그것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그는 "목표는 하나, 죽느냐 사느냐, 포기는 모른다, 이런 자세를 몸으로 배웠다"고 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뛰어들어 8승을 거둔 최경주(50) 이야기이다.

어떤 선수들이 골프를 잘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공의 키워드는 '간절함'이다. 그리고 최경주와 바다 이야기를 한다. 최경주는 중학교 때 역도를 배웠고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우연히 골프를 시작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아르바이트하고 여러 사람 도움 받아가며 골프를 익혔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힘깨나 쓰게 생겼지만 키는 172㎝로 작은 편이다. "미국은 러프가 질기고 길다. 공이 러프에 들어가면 찍어 쳐야 하는데 미들 아이언만 돼도 찍어 칠 수가 없었다. 10㎝만 더 컸어도…" 아쉬움 담긴 너스레다. 하지만 키가 더 컸어도 간절함이 없었다면 최경주는 머리 깎인 삼손 신세가 됐을지 모른다.

그는 하루 종일 그립 쥐는 연습을 하면서 제대로 쥐었나 안절부절못하다 그립을 쥔 채로 잠이 들곤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익힌 기본기들이 천하의 골프 스타들이 모이는 미 PGA투어에서 그를 지켜주는 무기가 됐다.

최경주(오른쪽)와 임성재. / 민수용 사진작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한다. 골프는 하루에도 열두번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스포츠다. 조금만 방심해도, 조금만 주눅들어도, 조금만 상황을 오판해도 '호랑이 입(虎口)'을 헤어나지 못한다.

최경주가 요즘 입만 열면 칭찬하는 선수가 있다. 그의 뒤를 이어 한국 골프의 위상을 한단계 더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임성재(22)다. 지난 2일 미 PGA투어 50경기만에 첫 승을 올린 임성재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가 뒷받침을 해줬다.

임성재는 두둑한 배짱이 최경주와 닮았다. "위기 때도 긴장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위기라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집중이 더 잘 되는 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의 간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성재는 "골프를 정말 좋아하고 지금보다 더 잘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그가 지난 시즌 미 PGA투어 선수들 중 가장 많은 35개 대회를 뛰었는데, "대회에 나가면 너무 좋아서"라고 했다.

최경주는 이렇게 평가했다. "임성재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다한다. 정말 부지런하다. 그러다 보면 자기 것이 생긴다. 회를 뜨는 칼도 매일 갈아야 하듯 골프 선수도 끊임없이 샷을 가다듬어야 한다." 자기 것이 있어야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 그는 퍼팅 라인을 읽거나 클럽을 선택할 때 캐디의 조언을 참고하지만 의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쇼트 게임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 너머로 배웠다. 임성재는 워낙 연습을 많이해 오른손 새끼 손가락이 완전히 펴지지 않을 정도다.

그린 주변 쇼트게임 연습을 할때는 가장 어려운 라이(lie·공이 놓인 자리)에서 오랜 시간 연습한다. 언젠가 이렇게 어려운 자리에 공이 놓이더라도 자신을 믿고 경기할 수 있도록 기량을 닦는다. 어려운 시기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결국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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