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101회 PGA챔피언십을 이틀 앞둔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 스테이트파크 블랙코스(파70·7459야드).
1번홀 티잉 구역으로 두 한국인 골퍼가 들어서자 "와이이양(Y.E. YANG), 한 번 더 타이거를 꺾어줘요!" "강(KANG), 축하합니다!" 하는 팬들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즈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선수로는 첫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른 양용은(47), 그리고 바로 전 대회인 AT&T 바이런넬슨 우승자인 강성훈(32)이 대회를 앞두고 1~9번홀에서 연습 라운드를 함께 돌았다. 비슷한 시각 연습 라운드를 돌던 잭 존슨(미국), 브룩스 켑카(미국), 대니 윌릿(잉글랜드) 등 동료 골퍼들이 강성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강성훈도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양용은 프로님을 보며 '나도 해보자'는 용기를 냈어요. 사실 양 프로님은 제 사촌형의 고교 친구라 든든한 친형님 같은 느낌이에요."(강성훈)
"내가 서른일곱이던 2009년 혼다클래식에서 처음 우승했어. 데뷔 9년 차에 처음 우승한 강 프로의 인내심과 실력이라면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양용은)
둘은 제주 출신이다. 공교롭게 이들과 함께 이번 대회에 출전한 임성재는 제주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를 제주도에서 다녔다. 이번 대회에 나온 한국 선수 5명 중 안병훈·김시우만 '비(非)제주도'다. 인구 67만명의 제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골퍼들이 쏟아지는 남다른 비결이 있는 것일까?
'바람의 아들'이란 애칭이 있는 양용은은 "제주는 바람도 많고 하루에도 수없이 날씨가 변해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기후에 쉽게 적응한다"며 "제주엔 미PGA 투어나 유럽 투어처럼 한지(寒地)형 잔디가 깔린 골프장이 많은 것도 이점 중 하나"라고 했다.
강성훈은 "제주는 국내에서도 문화·언어·음식 등이 타 지역과 차이가 크다. 그러다 보니 외국 생활 적응도 빠른 것 같다"고 '문화'적인 분석을 내놨다. 듣다 보니 은근히 고향 자랑이었다.
바람의 아들, 트럼프와 악수? - 양용은이 14일 연습 라운드를 돌면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분장을 한 팬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민학수 기자 |
베스페이지 블랙코스는 파70에 전장 7459야드여서 장타자에게 크게 유리하다. 전날까지 비가 많이 내린 데다 기온도 낮아 이날은 샷 비거리가 평소보다 20~30야드 정도 짧게 나온다고 했다. 양용은은 524야드짜리 7번홀(파4)에서 공식 대회 코스에서 처음으로 거리가 짧아 투온에 실패했다. 티샷 후 홀까지 남은 거리가 무려 265야드나 됐다. 그래도 '3학년 1반(3온 1퍼트)'으로 파를 지켰다. 퍼팅과 쇼트 게임이 뛰어난 그가 티샷 거리만 좀 더 나면 또 한 번 큰일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용은은 "메이저는 코스가 길고 어렵다. 욕심 내지 말고 매일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쳐야 진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강성훈은 꾸준히 고향 형님보다 30야드 정도 더 보냈다. 그는 티를 높게 꽂고 5~6도 정도 상향 타격을 하는 타법으로 비거리를 냈다. 평소 305야드 지점에 벙커가 있으면 캐리(carry·공이 날아가서 지면에 처음 떨어지는 거리)로 넘긴다고 했다. 강성훈은 "요즘은 먼저 거리를 내야 경쟁이 가능하다. 대회 때도 일주일에 두 번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어제도 했다"고 했다. 키가 173cm인데 팔과 다리 근육이 워낙 발달돼 작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이런 강성훈을 보며 양용은은 "우승하고도 전혀 들뜨지 않는 모습이 듬직하다"고 했다.
친형제처럼 푸근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둘은 연습 라운드를 마치고는 저녁 약속을 잡았다. 강성훈이 "우승 턱을 내겠다"고 하자 양용은이 "그래도 밥은 내가 사야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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