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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프로 양찬국
OB(아웃오브바운즈)구역 쪽으로 날아가는 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캐디에게 묻는다. “살았을까, 죽었을까?” “50 대 50이에요. 가보실까요.” 희망 섞인 대답에 ‘혹시나’ 하지만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공을 칠 때마다 ‘사느냐, 죽느냐’를 따지는 골프 같은 스포츠도 별로 없다. 자칫 불안과 걱정으로 라운드를 망칠 수 있다. ‘양싸부’란 별명을 지닌 양찬국(69)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 헤드프로는 즐겁게 라운드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準備)’라는 두 단어를 마음속에 새기라고 했다.
 
   그동안 5580명의 제자를 길렀다는 그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거침없고 즐거운 입담의 소유자이지만 자세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꼬장꼬장했다. ‘변호사가 소송을 준비하듯’ ‘의사가 수술을 준비하듯’ 라운드를 준비하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린 주변 어프로치는 빗자루질하듯’ ‘드라이버 스윙은 물수제비를 뜨듯’ 하면 금방 느낌이 전달된다는 비유가 좋았다.
 
   그립을 어떤 강도로 쥐느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는 엉뚱한 성적(性的) 비유를 해 50~60대 남성 수강생들의 배꼽을 빼놓았다. 많은 경험이 그의 입을 자유롭게 만든 것 같았다. 그의 몸에는 곳곳에 ‘죽느냐, 사느냐’의 상흔이 깊게 남아 있었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여러 전투를 겪었다. 많은 전우가 죽었다. 그의 종아리에는 총탄에 맞은 상처가 여전히 깊게 남아 있고, 고엽제 후유증도 앓고 있다. 페어웨이에 사람이 보이면 자주 OB를 낸다고 했다. “사람들을 향해서 공을 치면 순간적으로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골프는 그를 살려준 스포츠다. 총상을 입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그는 우울증을 앓으며 누워 있기만 했다. 술병을 입에서 떼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의 권유로 1972년 골프를 처음 접했다. 미국 이민생활 중 PGA클래스 A 자격증을 땄다. 2000년 귀국해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양싸부’란 애칭을 얻었다. 그는 ‘무자격’을 거론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64세의 나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다. 당시 회장보다도 나이가 더 많았다.
 
   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우즈베키스탄 대표팀 감독으로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다. 국내 대회에 출전한 우즈베키스탄 선수를 도운 인연이 협회를 출범시키고 프로대회를 만들어주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박세리와 최경주 선수의 활약으로 한국 골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아시아 각국의 골프 발전을 이끄는 지도자도 많이 배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 시절 ‘죽느냐, 사느냐’를 경험했던 그에게 ‘살아남는’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양싸부는 이렇게 말했다.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덤비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아요. 한 달이면 한 달 퍼팅만 연습하고, 다음은 퍼팅과 그린 주변 어프로치만 하는 식으로 연마해보세요. 드라이버가 자신 없으면 한두 달 드라이버만 연습하고요. 끝을 보는 거지요. 그럼 죽지 않아요.” 그의 스마트폰에는 드라이버부터 퍼팅까지 상황별 자료가 빼곡했다.

댓글 2개:

  1. 산호세 거주 한인입니다.
    산호세엔 골프 칼리지가 없으며, 위에분 자료도 사실과 맞지 않으니 잘 확인하시고
    기사를 쓰시기바랍니다.
    월남전 참전은 펙트가 아니며 80년대에 골프를 시작했다면 믿을까 70년대는 너무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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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양싸부님 찾아뵙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골프는 물론이고 인생의 프로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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