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무 더 잘 반사되게 하려고 연못에 검정 색소 뿌리기도
마스터스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8 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아멘 코너(11~13번 홀)에서 연습라운드를 지켜보다 예전에 최경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잔디, 화려한 장식처럼 울긋불긋 핀 형형색색의 꽃, 조지아 소나무가 펼쳐 보이는 오거스타의 스카이라인은 최경주의 말처럼 '천상의 골프코스'란 평가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너무나 흠 잡을 데 없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어떻게 그린은 구석구석 균일한 농도의 초록일까? 푸른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으로 보이는 연못과 개울은 도대체 얼마나 깨끗한 걸까?
오거스타 내셔널을 가상현실 속 공간처럼 만든 비결은 마스터스가 열리는 일주일을 위해 1년을 들여 준비하는 정성, 그리고 완벽한 모습을 빚어내기 위해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트릭이다.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균일한 초록을 만들고, 나무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엔 검정 색소를 뿌린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미국 조지아주)은 이런 화장(化粧)을 통해 비로소 ‘천국의 골프장’으로 변신한다. 사진은 오거스타 내셔널 12번 홀의 풍경. /게티이미지코리아 |
지난달 마스터스 조직위는 '오거스타 내셔널 잔디 깎는 기계들의 발레'라는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20대 가까운 잔디 깎는 기계들을 동원해 마스터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발레의 군무에 빗댔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18홀 코스지만, 관리 인력과 장비는 54홀을 관리해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보통 잔디 깎는 기계가 18홀 기준 6대 안팎이면 충분한데 오거스타는 20대 이상을 갖고 있다.
골프장 코스 관리 정규 인력도 50명이 되지만, 마스터스 일주일을 앞두고 100명의 자원봉사자를 추가로 투입한다. 대부분 20~30년 자원봉사 경력을 지닌 이들이 마스터스 위크 동안 하루 8차례 잔디를 깎는다. 그린 잔디 결이 공의 구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사방팔방으로 깎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롤러를 이용해 그린을 다진다. 소문난 0.3175㎝ '유리알 그린'이 이 과정으로 대회 내내 유지된다. 국내 남녀 대회는 격자형으로 하루에 두 번 깎고 롤링을 하는 게 보통이다.
9번 손질을 거친 잔디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1라운드를 앞두고 누렇게 변하는 곳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녹색 스프레이를 뿌리는 데 워낙 농도 조절이 뛰어나 전문가가 봐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TV 화면으론 투명하게 보이는 연못도 사실상 검정 색소를 넣어 한 치 속이 보이지 않는다.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 페어웨이 위에서 십여 대의 잔디 관리용 차량이 정비 중인 모습. /유튜브 |
나흘 동안 사용할 그린의 핀 포지션은 코스관리 감독관과 위원회 멤버들이 모여 수십 번씩 공을 굴려본 뒤 결정한다. 드라마를 연출하듯 가장 극적으로 공이 들어갈 만한 곳에 홀 컵을 만든다. 2005년 마스터스에서 'ㄱ'자처럼 90도로 꺾여 들어간 타이거 우즈의 칩샷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지난해 골프잡지인 골프다이제스트는 '여름 오거스타 내셔널은 어떻게 보일까'라는 글과 함께 곳곳에 잔디가 파이고 누렇게 헐벗은 코스 모습을 소개했다. 미국 남부 조지아의 무더위 때문에 페어웨이 위에 덮인 잔디가 고사(枯死)한 것이다. 그래서 오거스타 내셔널 측은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문을 닫고 잔디를 가다듬은 다음 10월에 다시 문을 연다. 미국에서 잔디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의 이준희 대표는 "4월 마스터스가 열리는 한 주에 모든 것을 맞춰 준비하는 역발상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고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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