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라우스·게리 플레이어도 녹슬지 않은 기량 과시
"저 할아버지들이 아까 조던 스피스 팀보다 더 잘 치는 것 같아요."
주름진 얼굴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아이언을 휘두르는데도 공을 홀에 척척 갖다 붙이는 세 명의 할아버지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한 꼬마 아이가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아이의 눈엔 걷기도 버거워 보인 이 할아버지들은 이름만으로도 골프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당대 최고의 골퍼들이었다.
마스터스에서 두 차례 우승했던 왓슨은 전성기 시절에 버금가는 퍼팅으로 6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파3 콘테스트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다. 샘 스니드가 1974년에 62세의 나이로 우승했던 기록을 깼다. 왓슨은 1981년 마스터스 우승 이듬해인 1982년에 파3 콘테스트에서 한 차례 우승한 경험이 있었다. 왓슨은 "첫 4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고 나서 우승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파3 콘테스트 우승자는 본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오랜 징크스가 있지만 왓슨은 이미 2년 전 대회를 끝으로 마스터스 본경기에선 은퇴했다.
마스터스 6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보유자인 잭 니클라우스는 손자 덕택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열다섯 살 손자인 개리 니클라우스가 135야드 9번홀에서 할아버지 대신 채를 잡아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 그가 마치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껑충껑충 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잭 니클라우스는 "오거스타에서 우승보다 더 기쁜 순간"이라고 감격했다. 83세 고령임에도 40·50대 유연성을 뽐내며 여러 차례 버디를 잡아낸 게리 플레이어도 왓슨과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 손자 일처럼 즐거워했다.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는 오거스타 정규 코스 옆에 별도로 조성된 짧은 9홀짜리 파3 골프장(총 1060야드)에서 열린다. 출전 희망 선수들과 왕년 챔피언들이 가족이나 연인·지인을 일일 캐디로 데려와 한바탕 웃고 즐기는 가족 축제다. 1960년 시작된 뒤 다른 대회 프로암과는 질적으로 다른 마스터스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4만여명의 팬이 몰리고 TV 생중계가 따라붙는 등 웬만한 PGA 투어 마지막 날 열기를 능가한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널드 파머는 "파3 콘테스트는 전주곡이 아닌 토너먼트의 중요한 일부"라고 했다. 지난해엔 강풍으로 사상 처음 중단됐었다. 올해는 타이거 우즈와 필 미컬슨이 참가하지 않아 맥 풀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할아버지 삼총사'가 이런 우려를 보기 좋게 씻어냈다.
조던 스피스(25)와 저스틴 토머스(25), 리키 파울러(30) 등 '영건'들도 '실버 파워'에 눌리지 않겠다는 듯 젊은 에너지로 팬들과 호흡했다. 토머스는 8번홀에서 갤러리로 온 윌이라는 소년에게 퍼팅 기회를 줘 평생 추억을 선물했다. 그는 "열 살 때 처음 마스터스 구경을 왔는데 한 프로가 아이에게 퍼팅 기회를 주는 것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버바 왓슨은 경사를 이용해 공을 멀리 쳤다가 되돌아오게 하는 퍼팅 묘기로 갈채를 받았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토니 피나우는 7번홀 홀인원 후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을 향해 달려가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다. 4일 오거스타는 숨 막히는 우승 경쟁을 앞두고 펼쳐진 '명랑운동회'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