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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4월 8일 촬영된 이 사진에서 진 사라센(중앙)은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오거스 타 내셔널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 우승 후 1500달러 수표를 받고 있다. /AP연합

1934년 마스터스가 출범하면서 US오픈, 디오픈챔피언십, PGA챔피언십 등 프로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시스템이 시작됐다.

1930년 보비 존스가 US오픈과 디오픈, 아마추어 대회인 US아마추어챔피언십과 브리티시아마추어챔피언십 등 당시 4대 메이저 대회를 한 해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를 골프에서는 오리지널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마스터스 출범 이후로 꼽으며 이를 처음 이룬 골퍼는 1935년 진 사라센(미국)이다. 이후 1953년 벤 호건(미국), 1965년 게리 플레이어(남아공), 1966년 잭 니클라우스(미국), 2000년 타이거 우즈(미국) 그리고 2025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까지 불과 여섯 명만 이 꿈을 이뤘다. 

왜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이루기 어려울까. 메이저 대회는 대회마다 특징이 뚜렷하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마스터스는 유리알 그린을 정복할 예리한 아이언 샷과 퍼팅 능력을 갖춰야 한다. US오픈은 긴 전장, 좁은 페어웨이와 깊은 러프, 빠른 그린 등 고난도 코스 종합 세트다. 영국 링크스 코스에서 열리는 디오픈은 변화무쌍한 바람과 날씨에 순발력 있게 적응해야 한다. PGA챔피언십도 만만치 않은 코스 세팅에 투어 프로 참가자가 많은 편이다. 고른 기량을 갖추고 피나는 경쟁이 벌어지는 중압감을 견뎌야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다. 골퍼 전성기는 대략 10년 남짓이라, 실력이 있어도 시기나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대회를 다 섭렵할 순 없다.

우즈와 함께 PGA투어 최다승 기록(82승)을 지닌 샘 스니드(미국)는 US오픈(4차례 준우승) 정복에 실패했고, 1945년 11개 대회 연속 우승에 한 해 18승이란 대기록을 세운 바이런 넬슨(미국)은 디오픈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60년대 인기 스타 아널드 파머(미국)는 PGA챔피언십에서 세 차례 준우승에 그쳐 꿈을 완성하지 못했다. 현역 중에서 필 미컬슨(미국)은 준우승만 6번 한 US오픈이란 ‘아픈 손가락’이 있고, 조던 스피스는 PGA챔피언십 우승만 남겨 놓고 있다. 

마스터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매킬로이까지 골프의 전설이 된 여섯 명의 골퍼를 소개한다. 이번 회에서는 전설의 시작을 알린 진 사라센과 불굴의 사나이 벤 호건, 두 명의 전설적 그랜드슬래머를 집중 조명한다.

사라센, 골프 최초의 미디어 스타로 등극

사라센은 1935년 4월 8일(이하 현지시각) 마스터스를 제패하며 사상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1922년 US오픈과 PGA챔피언십을 제패했고 1932년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마스터스 첫 출전에서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빚어냈다. 선두에 3타 뒤지고 있던 사라센은 15번 홀(파5)에서 홀까지 232야드를 남기고 4번 우드로 200만분의 1 확률이라는 앨버트로스(기준 타수보다 3타가 적은 스코어로 홀아웃하는 것)를 기록하며 동타를 만들었다. 다음 날 36홀 연장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 장면이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사라센은 일약 골프 최초의 미디어 스타로 떠올랐다. 

1902년 미국 뉴욕주 해리슨에서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라센은 집 근처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목수와 캐디를 병행하며 어렵게 골프를 연마하다 스무 살이던 1922년 메이저 2승을 거두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1931년 샌드웨지를 창안한 발명가이기도 했다. 억만장자인 하워드 휴스와 함께 탄 비행기가 양력을 얻어 날게 되는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기존 피칭웨지 바닥 부분에 금속을 붙여 모래를 쉽게 탈출할 수 있게 한 이 샌드웨지는 벙커에 약하던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골퍼를 ‘벙커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사라센은 1932년 디오픈에서 우승할 때 샌드웨지를 비밀 병기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규칙에 위반되지 않을까 싶어 눈에 띄지 않도록 갖고 다녔다고 한다. 공의 2~3㎝ 뒷부분 모래를 쳐 그 폭발력으로 공을 탈출하게 하는 벙커샷 기술도 그의 작품이다. 메이저 7승 포함 PGA투어 통산 38승을 거둔 사라센은 1974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 후에는 코스 설계가로 변신했다. 사라센은 평소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굿샷을 날리는 일은 아주 쉽다. 기초가 튼튼하면 늙어서도 가능한 일이다” 라고 했다.

1953년 7월 10일 촬영된 이 사진에서 벤 호건이 스코틀랜드 카노스티에서 열린 영국 오픈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연합

호건, 교통사고 부상 1년 만에 극복하고 우승

사라센에 이어 두 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은 ‘현대 골프 스윙의 창시자’ 벤 호건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집요한 연습으로 역경을 극복한 투혼의 아이콘이다.

1946년 PGA챔피언십, 1948년 US오픈, 1951년 마스터스, 1953년 디오픈을 통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특히 1953년에는 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을 모두 석권하며 메이저 3연승을 기록했다. 당시 디오픈과 일정이 겹친 PGA챔피언십에 출전하지 못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무산됐다. 

호건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50년 US오픈 우승이다. 한 해 전 호건은 아내와 함께 타고 있던 자동차가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중상을 입었다. 의사는 다시 걷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끝내 복귀해 스포츠 사상 가장 극적인 부활 드라마라 불리는 1950년 US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메리온 골프클럽 18번 홀에서 그가 1번 아이언으로 그린에 공을 올리는 장면은 골프 사상 가장 멋진 사진 중 하나로 꼽힌다. 호건은 하루에 1000개 이상의 공을 치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샷 하나하나를 실험하듯 분석해 그의 연습장은 ‘호건 연구소’라 불렸다. 

1912년 미국 텍사스주 더블린에서 태어난 호건은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자살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직접 아버지 죽음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캐디 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골프를 익혔다. 그는 골프 선수로서 커리어가 중단될 때마다 오히려 불굴의 투혼으로 일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 공군으로 3년간 참전했지만, 1946년 시즌 13승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골퍼로 거듭났다. 1949년 교통사고 이후 1950년과 1951년 US오픈 2연패를 이뤘고, 1953년에는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을 이뤘다. 메이저 9승을 포함해 PGA투어 통산 64승을 거두었다. 스니드와 우즈(이상 82승), 니클라우스(73승)에 이어 다승 부문 4위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 ‘태양을 따라서(Follow the Sun)’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벤 호건의 5가지 레슨(Five Lessons:The Modern Fundamentals of Golf)’은 지금도 골프팬의 애독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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