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1조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에서 고대하던 첫 우승을 나란히 거둔 임진희(27)와 이소미(26)는 세계 무대를 주름잡던 한국 여자 프로 골프의 초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수들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둔 임진희와 5승을 거둔 이소미가 2023년 겨울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그들을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장타를 날리는 선수들도 아니고 박성현이나 고진영처럼 KLPGA투어를 압도하던 선수들도 아니었다. 이들이 Q스쿨을 통과해 지난해 LPGA투어에 입성했을 때에도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였다. 연간 30여 개 대회가 열릴 정도로 몸집을 불린 KLPGA투어에서 이들은 연간 10억~20억원 이상을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랐다. ‘세계 무대에서 엄청난 성적을 올릴 자질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굳이 고생길을 자초하느냐’는 회의와 냉소 섞인 시선이다.
하지만 이들은 내면이 단단한 선수들이었다.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확인해보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찬 선수들이다. 세계 골프의 변방이었던 한국 여자 골프를 단기간에 세계 중심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기도 하다.
임진희는 지난해 11월 안니카 드리븐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었고, 이소미는 이달 마이어 클래식에서 3위에 올랐다. 임진희는 훈련에 방해가 된다며 휴대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한국 골프의 레전드 최경주의 완도 화홍초등학교 후배인 이소미는 탱크처럼 중간에 멈추는 법을 모른다.
국내 선수들에게 LPGA투어는 예전처럼 풍요로운 땅이 아닐 수 있다. 이동 거리가 길어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운데다 투어 경비가 국내의 대 여섯 배가 든다. 세계 각국의 유망주가 몰려들면서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국내 기업들은 우승을 거두지 못하면 TV 중계 화면에도 잘 잡히지 않는 이들보다는 KLPGA투어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에게 쏠렸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LPGA투어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의 숫자는 2020년 이후 한 명에서 두세 명에 불과하다. 1년에 LPGA투어의 절반 가까운 15승을 거두던 한국 여자 골프는 최근 한 해 서너 번 우승하기도 힘겨워한다.
두 선수 모두 메인 스폰서(주 후원사) 없이 올 시즌을 시작했다. 임진희에게는 신한금융그룹이 세계 무대 도전을 응원하며 키다리 아저씨의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소미는 여전히 모자 가운데에 후원사 로고가 없는 ‘민 모자’를 쓰고 있다.
이들이 연장에서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인 18번 홀(파3)에서 승리한 것은 상징처럼 보였다. 임진희는 제주 출신, 이소미는 완도 출신으로 나란히 ‘섬 소녀들’이다. 더 큰 꿈을 향해 기꺼이 물을 건너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것처럼도 보였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여자 골프 대회인 US여자오픈에 한국 선수들이 한 해 40~50명씩 출전해 10년에 7번 우승컵을 들어 올려 ‘US 코리아 오픈’이라 불리던 시절, 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은 개인이 아니라 한 명의 선수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연습하고, 함께 경기하고, 함께 세계 무대로 진출해,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임진희는 “혼자선 우승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소미는 “작년 신인 시즌 힘들었는데, 지금 함께 우승을 이뤄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팀 이름은 ‘BTI’(Born To be Island)’다. 두 선수 모두 섬 소녀들(아일랜드 걸스)이라 지은 이름이라는데 세계적 그룹 BTS와 이름이 닮았다.
박세리와 세리 키즈가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시절 외신들은 “여자 골프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상품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임진희와 이소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과 끈끈한 우정으로 기어코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수년간 미국과 일본, 태국 선수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것처럼 보이던 한국 여자 골프가 특유의 도전 정신과 뚝심을 회복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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