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선수냐고요(Best Golfer In the World)? 인정합니다(Guilty).”
골프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29·미국)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자 후원 업체 나이키가 내놓은 축하 광고 문구다. 셰플러는 지난해 PGA 챔피언십 2라운드를 앞두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사진(머그샷)을 찍는 해프닝을 겪었다. 대회가 열린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발할라 골프클럽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가 교통사고로 통제되자 경찰 정차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가려다 체포됐다. 곡절 끝에 그는 공동 8위로 마쳤다. 이후 경찰 폭행, 난폭 운전 등 혐의는 기각됐다.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축하였던 셈이다.
셰플러는 19일(한국 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퀘일할로 클럽(파71·7626야드)에서 열린 107회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4개로 이븐파 71타를 쳤다. 최종 합계 11언더파 273타. 브라이슨 디섐보, 해리스 잉글리시, 데이비스 라일리(이상 미국) 등 공동 2위 선수들을 5타 차로 따돌리고 워너메이커 트로피 주인공이 됐다. 우승 상금은 342만달러(약 48억원). 셰플러는 이 대회 우승으로 만 29세 이전에 PGA 투어 15승과 메이저 3승을 달성한 세 번째 선수가 됐다.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타이거 우즈(미국) 다음이다.
셰플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저녁 준비를 하다 손바닥을 다쳐 올해 다소 주춤했다. 그사이 로리 매킬로이가 마스터스를 포함, 시즌 3승을 거두며 제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셰플러는 2주 전 더 CJ컵 바이런 넬슨 8타 차 우승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1위가 누군지 보여줬다.
이번 대회에서도 고비는 있었다. 대회를 앞두고 100㎜ 이상 폭우가 쏟아졌지만 주최(PGA 오브 아메리카) 측은 이른바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s)’ 규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공에 진흙 등 이물질이 묻기 쉬운 환경에선 페어웨이에 떨어진 공을 정해진 범위 이내에 옮겨 놓고 치게 하는 것.
애증이 담겼나 - 스코티 셰플러가 1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퀘일할로 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확정한 후 모자를 땅에 집어던지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차분한 평소 성격과 다른 모습이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셰플러는 첫날 16번 홀에서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냈지만 진흙이 묻은 공(머드 볼)으로 친 두 번째 샷이 물에 빠지면서 더블보기를 했다. 셰플러는 “‘공은 놓인 그대로 쳐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할 수 있지만, 평생을 바쳐 공을 정확히 치는 법을 익혀온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불평했다. 지난해엔 ‘머그샷’, 올해는 ‘머드샷’으로 어수선해진 양상이다.
‘드라이버 테스트’ 문제도 불거졌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선수들 드라이버 페이스가 얇아져서 반발력이 높아지지 않았는지 대회마다 무작위 검사를 한다. 페이스는 오래 쓰면 얇아지기도 한다. 지난달 마스터스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룬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검사에서 불합격해 다른 드라이버를 사용하다 티샷이 흔들리면서 공동 47위(3오버파)에 그쳤다. 매킬로이는 나흘 내내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셰플러도 “검사에 불합격해 예비 드라이버를 사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대회 셰플러 드라이브샷 정확도는 공동 30위(62.5%)에 그쳤지만 아이언 샷의 정확성을 보여주는 그린 적중률 공동 6위(65.28%), 그린 적중시 퍼트수 2위(1.57개)로 스코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날 3타 차 선두로 출발한 셰플러는 9번 홀(파4)까지 2타를 잃어 욘 람(스페인)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하지만 10번 홀(파5) 버디로 곧바로 단독 선두를 되찾았고 14번 홀(파4)과 15번 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달아났다. 15번 홀까지 3타를 줄였던 람은 페널티 구역이 도처에 포진해 ‘그린 마일(사형장 복도)’이란 별명이 붙은 16~18번 홀에서 5타를 잃으며 무너졌다. 람은 공동 8위(4언더파)로 떨어졌다. 그린 마일에서 셰플러는 나흘간 1타밖에 잃지 않았다. 전 세계 1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가끔 셰플러는 우리랑 장난치듯 경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셰플러는 “마인드 컨트롤이 내 최대 강점”이라며 “오늘 스윙이 잘되지 않을 때도 인내심을 유지한 것이 우승 요인이다”라고 했다. 이날 2타를 잃은 김시우는 공동 8위(4언더파)에 올라 메이저 대회 첫 톱10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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