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로 성장한 마스터스는 전통과 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대 생활 습관의 변화를 반영해 다른 대회가 관람객의 휴대폰 반입을 허용하는데도 마스터스는 여전히 금지한다. 올해 연습라운드에서 대학 선수의 코치가 반바지를 입었다가 쫓겼나기도 했다. 일반 팬은 반바지를 입을 수 있지만 선수와 코치의 복장 규정은 또 다르다.
대회 운영에서도 이런 마스터스의 원칙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1번 홀에서만 출발하는 전통적인 출발 방법을 쓴다는 점이다. 코스에서 라운드를 시작하는 방법은 한 개의 티에서만 출발하거나 두 개의 티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LIV 골프나 이벤트성 대회에서는 모든 티(소위 샷건 방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마스터스는 1번 홀 티에서 모든 선수들이 차례로 출전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은 2025 마스터스 3라운드 1번 홀에서 수많은 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리 매킬로이가 티샷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전통적인 출발 방법은 골프 역사의 초창기부터 실시했던 방법으로 1번 홀부터 라운드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1번 티에서만 출발하는 전통적인 출발 방법의 장점은 모든 출전 선수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개의 티, 예를 들어 1번 티와 10번 티에서 출발하면 홀마다 난도가 다르기에 출전 선수들의 플레이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다. 1번 홀이 쉬우면 가볍게 버디를 잡으며 출발할 수 있는 반면에 10번 홀이 어렵다면 보기로 쫓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예선 2라운드에는 플레이 조건을 같게 만들어 주고자 출발 티를 바꿔준다.
초창기의 골프는 소수의 회원들이 매치 플레이로 라운드를 했기 때문에 1번 홀에서만 출발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회원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출발 티를 두 개로 늘렸고, 오늘날에도 1번과 10번 티에서 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프로 대회도 출전자가 적으면 1번 티에서만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출전자가 많으면 두 개의 티로 출전 인원을 분산시켜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PGA 투어 대회는 두 개의 티를 사용하여 출발하고 있다. 다만 메이저 대회의 본선에서는 모든 그룹이 1번 티에서만 출발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2025 마스터스의 초청 선수는 96명이었다. 비제이 싱(피지)이 부상으로 기권하여 95명이 됐다. 출전자들이 32개 조로 나뉘어 1번 티에서만 출발했다. 2라운드에서는 1조-16조의 출발 시간을 17조-32조와 맞바꿔주었다. 즉, 1라운드의 1조와 16조는 2라운드에서는 17조와 32조가 된다. 예를 들어 1라운드에 7시 40분에 출발한 1조는 2라운드에 17조로 10시 48분에 출발하게 된다. 1라운드에 마지막 조인 32조는 오후 1시 45분에 출발하지만 2라운드에서는 16조로 오전 10시37분에 출발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스터스 1-2라운드는 출발 조들을 절반으로 나누어 출발 시간을 바꿔주고 있다.
마스터스에서 유명한 프로들은 출발 시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당연히 특별 대우를 받는다. 세계1위인 스코티 셰플러를 갤러리가 없는 시간대인 7시40분에 출발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역차별이다. PGA 투어의 출발 조 편성과 출발 시간은 철저하게 성적과 명성에 따라 작성된다. 갤러리와 TV 시청자들의 인기도에 따라 PGA 투어의 상위 랭커와 인기있는 프로들이 좋은 시간대를 배정받는다. 마스터스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불문율이다.
2025 마스터스의 1라운드 출발 시간표에서 11조-16조와 27조-32조가 황금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 1위이면서 2024 마스터스 우승자인 셰플러는 1라운드에서 14조로 10시15분에 출발하여 2라운드에서는 30조로 오후 1시23분에 출발한다. 세계2위이면서 2025 마스터스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로리 매킬로이는 1라운드 29조로 오후 1시12분, 2라운드 13조로 오전 9시58분에 출발한다. 두 선수 모두 가장 좋은 시간대에 출발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지역에서 태양은 오전 7시 5분에 떠서 오후 7시 55분에 진다. 햇살아래 플레이할 수 있는 낮 시간은 12시간 50분 동안이다. 2025년 마스터스에서 95명의 출전자들은 3인1조의 32개 조(2인 플레이 1개 조 포함)로 나뉜다. 첫 조는 1번 티에서 7시 40분에 출발한다. 출발 간격은 11분이다. 마지막 조는 1번 티에서 오후 1시 45분에 출발한다. 3인1조의 18홀 플레이 시간을 4시간 30분으로 잡을 때, 마지막 조는 6시 15분 무렵에 라운드를 끝내게 된다. 일몰 시간(오후 7시55분)과는 1시간 30분 이상 차이가 있어서 여유가 있다. 즉, 1번 티에서만 예선전부터 출발하더라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 일기 상황을 갖고 있다.
마스터스에서처럼 1번 티에서만 출발하게 되면 95명의 출전자들을 출발시키는 데에만 6시간 5분이 걸린다. 즉, 7시 40분에 출발하기 시작하여 오후 1시 45분에 출발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출전 선수들을 출발시키는 데에만 6시간 이상이 걸리는 1번 티 출발 방법은 기상 이변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출발이 늦어지거나 지체될지라도 1번 홀에서 출발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풍이나 천둥번개로 2시간 이상 지체되면 일몰 때문에 예선 라운드를 제때 마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32개 조가 연달아서 코스 속으로 투입되면 교통체증 현상처럼 플레이 지체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우선 출발 간격을 11분으로 설정하고 있다. 10분 출발 간격보다는 조금은 앞 조와의 간격이 여유로운 출발이다. 또한 6개 조나 7개 조 뒤에 6분의 간격을 더 부여하여 대기 시간을 줄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4번 홀은 240야드로 세팅되어 상당히 어려운 파3 홀이다. 이 홀에서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여 뒷 조들은 대기할 가능성이 높다. 출발 간격을 6-7개 조마다 11분이 아니라 6분을 더한 17분 간격으로 출발하게 되면 어느 정도는 대기 시간을 없앨 수 있다.
2025 마스터스의 본선 진출자는 53명이다. 2024 마스터스에 비하여 7명이나 줄었다. 53명을 성적순으로 2인1조로 나누면 27개 조가 된다. 챔피언조부터 2인1조로 채우다보면 혼자 라운드를 해야 하는 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챔피언조는 마지막 조로 출발한다. 따라서 혼자 라운드하는 예선 마지막 순위자는 첫 조로 가장 먼저 출발하게 된다. 2025 마스터스 3라운드는 27개 조가 오전 9시50분-오후 2시40분까지 4시간 50분에 걸쳐서 1번 티에서만 출발했다. 4라운드에서는 오전 9시40분~오후 2시30분까지 1번 티에서만 출발했다. 3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출발에만 4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다만 3라운드보다는 첫 조의 출발 시간을 10분 당겼다.
2025 마스터스 3·4라운드에서는 홀과 홀 사이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 27개 조를 7개조, 다음7개조조, 그 다음 7개조, 마지막 6개조로 나누고, 각각 10분간의 출발 간격을 추가하여 출발시켰다. 즉, 8번째 조, 15번째 조와 22번째 조는 출발 간격이 10분이 아니라 10분을 추가한 20분 간격을 가지고 라운드를 출발했다. 이처럼 추가되는 10분의 출발 간격은 앞 조들이 만든 지체 시간을 해소하는데 쓰여 후속 출발 조들의 플레이 흐름이 좋아질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의 일몰 시간은 오후 7시 55분이다. 챔피언조는 오후 6시 30분쯤 라운드를 종료한다. 일몰까지는 1시간 이상이 남게 된다. 그 유명한 그린 재킷 수여식은 석양과 함께 마무리되곤 한다. 마스터스의 우승자가 저녁 노을을 붉고 찬란하게 물들이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펀집자 주>
국내 골프 규칙의 대표적 전문가인 최진하 박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경기위원장을 지냈다. 용인대 대학원에서 ‘골프 규칙의 진화 과정에 관한 연구–형평성 이념(equity)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체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 USGA(미국골프협회)의 레프리 스쿨을 모두 이수하고 두 기관으로부터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최진하 박사와의 골프 피크닉’이란 이름의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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