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미국의 따뜻한 남쪽 조지아주에 있다. 겨울 휴가지로 좋은 코스다. 여름에는 다섯 달 동안 문을 닫는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마스터스와 동의어다. 마스터스 없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상상하기 힘들다.
마스터스 13번 홀 그린 앞을 흐르는 래의 개울은 수많은 골퍼의 공을 삼킨다. 2024년 마스터스에서 캐머런 영이 공을 찾고 있는 모습. /USA투데이스포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보비 존스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코스다. 보비 존스는 구성(球聖)이라고 불린다. 골프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영원한 아마추어 골퍼다.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다. 28세의 약관에 은퇴하고 은둔할 코스로 금융업자 클리포드 로버츠와 보비 존스가 공동으로 설립한 코스가 바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이다. 아멘 코너라는 말을 만든 허버트 윈드 기자는 “보비 존스없는 골프는 파리없는 프랑스와 같다”고 썼다.
김주형이 2023년 마스터스 1라운드 13번홀(파3)에서 이글을 잡은 뒤 기뻐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1932년 12월에 개장했다. 회원권을 파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1934년에 마스터스 대회를 창설했다. 개장한지 2년밖에 안된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당대의 고수들이 출전한 이유는 바로 보비 존스 이름으로 새겨진 초청장 때문이었다. 대회 명칭도 오거스타 내셔널 초청 대회(Augusta National Invitation Tournament)였다. 보비 존스도 첫 대회부터 1948년 마스터스까지 출전했다. 보비 존스의 명성 덕택으로 대공황이나 2차 세계대전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명문 코스로서의 명성을 갖게 되었다.
마스터스의 전설은 아멘 코너와 함께 커져 갔다. 보비 존스의 말처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인코스는 30타대 초반도 가능하지만 집중력을 잃으면 40타대 중반도 가능한 코스다. 1986년 잭 니클라우스는 인코스에서 30타를 치면서 마스터스 최고령 우승자가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11년 마스터스에서 로리 매킬로이는 4타차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했으나 인코스에서 43타를 치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지금도 마스터스는 일요일 오후, 인 코스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13번 홀은 아멘 코너 가운데 손 쉽게 스코어를 줄일 수 있는 홀로 통하지만, 한번 실수는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홀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인 코스는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다. 1934년 1회 마스터스 대회에서는 아웃 코스였다. 지대가 낮아 그늘이 많이 졌고, 서리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자 2회 대회 때부터 인 코스가 되었고 아멘 코너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아멘 코너는 11번 파4 홀부터 시작하여 12번 파3 홀을 거쳐서 13번 파5 홀에서 끝난다. 마스터스에서 가장 어려운 홀은 11번 파4 홀이고, 가장 쉬운 홀은 13번 파5 홀이었다. 세계 최고의 라우팅(배치된 홀의 경로; Routing)으로 꼽힌다. 아멘 코너를 구성하는 세 홀은 각각이 세계 최고의 파4, 파3 및 파5 홀로 선정되고 있다.
아멘 코너의 마지막 홀인 13번 홀은 오거스타 내셔널의 가장 깊숙하고 내밀한 곳에 티잉구역이 위치하고 있다. 12번 홀 퍼팅그린과 함께 갤러리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신성한 구역이다. 보비 존스와 함께 공동 설계가인 알리스터 맥켄지 박사가 오거스타 내셔널을 걸어서 살펴보면서 13번 홀(건설 당시에는 4번 홀)의 페어웨이를 발견했는데, 그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페어웨이는 좌로 도그레그 형태로 뻗어 있었고, 래의 개울이 그린 앞 쪽에서 페어웨이 왼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지형이었다. 설계가로서 맥켄지 박사는 12번 홀 퍼팅그린 바로 옆에 13번 홀의 티잉구역을 만들고, 래의 개울 뒤쪽으로 13번 홀의 퍼팅그린을 조성했을 뿐이었다. 즉, 13번 홀의 페어웨이는 발견한 당시의 모습을 현재에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13번 홀은 설계한 홀이 아니라 걸으면서 발견한 홀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마치 톰 모리스 시절(1860년대 전후)에 반나절만에 코스 하나를 뚝딱 완성하였듯이 지형 그대로를 살려서 홀을 완성한 셈이다.
13번 홀은 세계 최고의 파5 홀로 통한다. 보비 존스는 모든 파5 홀들은 세계 최고의 프로들이라면 투 온을 노릴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비 존스는 파5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공략하려면 중대한 결심(momentous decision)을 하도록 파5 홀은 전략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보비 존스에게 파5 홀은 도전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홀로서 위험과 보상(risk-reward)이 공존하는 홀이었다. 13번 홀은 보비 존스의 이러한 생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파5 홀이다. 2006년 미국오픈 우승자인 제프 오길비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13번 홀을 가장 완벽한 홀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설령 완벽한 홀이 아니라면 완벽한 홀에 가깝도록 만들어진 홀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13번 홀은 개장 당시에 480야드였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가장 짧은 파5 홀이다. 좌 도그레그 홀로 페어웨이 좌측은 숲과 래(Rae)의 개울이 흐르고, 페어웨이 우측은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페어웨이의 경사가 우에서 좌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개울로 가까이 티샷을 보낼수록 위험하지만 홀과의 거리도 짧아지고 좋은 라이가 보장되며 그린을 수평으로 공략할 수 있다. 티샷을 오른쪽으로 보내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홀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오르막 라이에서 그린을 대각선으로 공략해야 한다.
13번 홀의 퍼팅그린은 앞은 개울로 보호되고, 그린 뒤에는 4개의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퍼팅그린의 경사는 우에서 좌로, 개울 쪽으로 흐른다. 세컨드 샷을 레이업하여 3번째 샷으로 홀을 공략하려해도 오르막 라이에서 퍼팅그린을 대각선으로 공략해야하기 때문에 버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볼이 개울에 빠지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파5 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3번 홀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는 1978년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발생했다. 토미 나카지마가 이 홀에서 13타를 쳤다. 12타의 기록도 있다.
하지만 13번 홀의 스코어는 대체로 좋은 편이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가장 쉬운 홀이다. 4라운드 합산 기록으로 이 홀에서 2개의 이글과 2개의 버디로 6타를 줄인 기록도 10번이나 있을 정도다.
타이거 우즈가 1997년 마스터스에서 13번 홀을 3번 우드-8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하자 2002년 이 홀의 길이를 30야드 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0야드로 세팅된 13번 홀은 여전히 가장 쉬운 홀이었다. 2014년 마스터스 우승자인 버바 왓슨은 360야드의 티샷 후에 144야드를 56도 웨지로 13번 홀을 공략했다.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투 온 공략하는 파5 홀이 되자 13번 홀의 길이를 2023년에 35야드를 더 늘려서 545야드로 세팅했다. 타이거 우즈도 이제는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고 4번 아이언으로 투 온 공략을 해야 하는 파5 홀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티잉구역을 왼쪽으로 옮겨서 왼쪽의 숲 때문에 페이드 티샷을 못치도록 만들어서 난도가 높아졌다.
13번 홀의 길이를 545야드로 늘린 첫 해에도 가장 쉬운 홀이었으나 2024년 마스터스에서는 가장 어려운 파5 홀이 되었다.
아멘 코너의 종착역인 13번 파5 홀은 별칭이 아잘리아(철쭉) 홀이다. 1600여 그루의 철쭉이 페어웨이 왼쪽과 그린 뒤에 심겨져 있다. 100년 전에도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기에도 아름다운 홀이다. 마스터스 3승에 빛나는 게리 플레이어는 천국에 골프코스가 있다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같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을 정도다. 18개 홀들이 온갖 꽃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아름다움 속에 마스터스에 출전한 명인(마스터스)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1937년 마스터스 대회, 바이런 넬슨은 13번 홀에서 드라이버로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낸 뒤 투 샷 공략 여부를 고민하다가, “하느님은 겁쟁이를 싫어한다”며 3번 우드로 그린을 공략하여 이글을 낚으며 결과적으로 우승했다. 이처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13번 파5 홀은 아직까지도 영웅과 겁쟁이를 가르는 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펀집자 주>
국내 골프 규칙의 대표적 전문가인 최진하 박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경기위원장을 지냈다. 용인대 대학원에서 ‘골프 규칙의 진화 과정에 관한 연구–형평성 이념(equity)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체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 R&A와 미국 USGA(미국골프협회)의 레프리 스쿨을 모두 이수하고 두 기관으로부터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최진하 박사와의 골프 피크닉’이란 이름의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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