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은 홀을 지나치지 않으면 결코 볼은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골프 격언이다. 주말 골퍼들은 “600년 골프 역사에 한 번도 짧은 퍼트가 홀에 들어간 적이 없다”며 퍼팅이 짧은 동반자를 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세게 치면 3퍼트의 위험성이 생긴다. 적절한 스피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자에서 골프 교습가로 전업한 데이브 펠츠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다양한 골프의 궁금증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추구했다.
펠츠는 무수히 많은 공을 굴려보며 관찰한 결과 홀을 43㎝(17인치) 지나가는 정도의 스피드로 퍼팅할 때 홀에 볼이 들어가는 입사각이 가장 넓어진다고 주장했다. 특히 홀 주변에는 깃대를 꽂거나 빼기 위해, 홀에 들어간 볼을 꺼내기 위해, 퍼팅 라인을 보기 위해 지나치는 골퍼들의 발자국으로 지면이 울퉁불퉁해진다. 홀을 둘러싸고 도넛 모양으로 생기기 때문에 ‘도넛 현상’이라고 부른다. 볼이 홀에 딱 떨어질 정도의 퍼팅 스피드라면 도넛 현상으로 생기는 불규칙 바운스에 영향을 받기 쉽다. 홀을 43㎝ 정도 지나칠 정도의 빠르기라면 이런 불규칙 바운스를 극복하면서도 성공하지 못했을 때 다음 퍼트에도 큰 부담은 없다는 설명이다.
3월 23일(현지시각) 전립선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데이브 펠츠(1939~2025 미국)는 골프에 물리학을 접목한 ‘골프계의 갈릴레이’였다. 미국 현지 언론은 26일 뒤늦게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샷 통계 분석 시스템(shot link)이 나오기 전 이미 골프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쇼트 게임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일반 골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을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필 미켈슨(미국)과 톰 카이트(미국), 콜린 몽고메리(영국), 비제이 싱(피지), 스티브 엘킹턴(호주),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미셸 위(미국) 등이 세계 정상급 선수 100여명을 지도했다. 이들이 일군 메이저 대회 우승만 스무 차례가 넘는다.
쇼트게임 레슨의 대가로 불렸던 그는 100야드 이내의 샷이 얼마나 중요한지 통계 연구를 적용해 분석했다. 대부분 골퍼가 파를 놓치는 80%의 샷이 100야드 이내 거리에서 발생하며, 퍼팅이 전체 게임의 43%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DC 외곽에 있는 NASA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에서 행성의 대기를 연구하고 위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핵 물리학자였던 펠츠는 어떻게 ‘쇼트게임의 마법사’ 미켈슨을 지도하는 골프 레슨의 대가로 변신한 것일까.
펠츠는 1939년 10월 8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주니어 골프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골프 장학금을 받고 인디애나 대학교에 진학해 물리학을 전공했다. 수학, 철학, 천문학을 부전공했다. 그는 프로 골퍼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지만, 아마추어 대회에서 한 살 아래 잭 니클라우스에게 22전 전패를 당하며 선수의 꿈을 접었다. 펠츠보다 한 살 아래였던 니클라우스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시절 이미 최고의 아마추어 골퍼로 군림하며 훗날 ‘황금 곰’이라는 애칭과 함께 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 최다승 기록(18승)을 보유하는 전설적인 골퍼로 성장한다. 펠츠는 한 인터뷰에서 “니클라우스를 상대로 0승 22패가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잭 니클라우스를 이긴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NASA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골프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1976년 NASA를 떠나 골프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펠츠는 어떻게 하면 골퍼들이 타수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섰다. 골프 레슨과 골프 기구의 발명, 저술 및 방송 활동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천문학과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한 연구로 근대과학의 기초를 다진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르네상스적인 인간이었다.
PGA투어 3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모든 샷의 60% 이상이 100야드 이내의 쇼트게임인 것을 발견했다. 쇼트게임이 좋은 선수가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을 확인했다. 100야드 이상 거리에서 나오는 샷 실수는 7%였지만, 거리가 짧은 100야드 이내 실수는 16∼20%로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골프 교습가로 변신한 지 2년 만인 1978년 그의 제자 앤디 노스(미국)가 US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순식간에 유명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처음 데이브 펠츠 스코어링 게임스쿨을 연 펠츠는 미국 전역에 40개의 쇼트게임 스쿨을 운영했다. 하루 레슨비가 2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그가 저술한 ‘쇼트 게임 바이블(Short Game Bible)’ 1년 만에 15만부가 팔리며 1999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에 선정됐다.
펠츠는 퍼터와 웨지의 스윙 메커니즘 연구를 통해 40여개의 연습기구를 개발하고 20개의 특허를 출원한 발명가이기도 했다. 소렌스탐이 사용하며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캘러웨이의 오디세이 투볼 퍼터도 그의 작품이다. 정렬에 도움을 주기 위해 퍼터 페이스 뒤에 골프공과 같은 지름의 원 2개를 배치한 독특한 디자인과 높은 관성 모멘트를 지닌 제품이다. 2001년 출시돼 2년 만에 미국 내에서 팔리는 퍼터 4자루 중 1자루꼴로 팔려 시장을 완전히 석권했다. 양궁 과녁 같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테이프를 퍼터 페이스에 붙여 어느 곳에 임팩트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티처 퍼터(Teacher Putter)’도 그의 아이디어 제품이었다.
쇼트 게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펠츠는 제자들에게 긴 클럽을 하나 줄이고 웨지를 추가해 4개의 웨지로 클럽을 구성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거리 조절을 더욱 정밀하게 할 수 있었다.
펠츠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미켈슨이었다. 2003년 말 당시 43차례 메이저 대회 출전에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미켈슨이 그를 찾았다. 펠츠는 “당신은 이미 최고인데, 왜 내가 필요하죠?”라고 물었다. 미켈슨은 “18홀 평균 스코어에서 라운드당 0.25타를 줄여 4라운드 대회에서 1타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미켈슨은 메이저 대회에서 여섯 번이나 1타 차로 패했다. 펠츠는 AEMAX(Analyze your game, Eliminate your weaknesses, and Maximize your ability to score)란 이름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경기 분석을 통해 약점을 제거하며 스코어를 만드는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의미다. 펠츠는 미켈슨이 평균 10야드 거리의 벙커 샷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파악해 집중적으로 연습하도록 했다. 미켈슨은 “마스터스에서는 드라이버 샷을 가능한 한 멀리 보내는 데 주력하고,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는 더 정교한 쇼트게임을 구사하는 전략을 세웠다”며 “경기력이 빠르게 향상된 것은 펠츠가 수집한 데이터 덕분이었다”고 했다. 2006년 샌드 세이브(벙커에서 파나 파보다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 순위 180위에서 2년 만에 3위로 올라섰다. 미켈슨은 펠츠와 함께 세 차례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6차례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미켈슨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펠츠가 가르쳐준 많은 것이 지금의 제 성공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는 이제 그 지혜를 수많은 골퍼에게 전하며 그의 가르침을 이어갈 것이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나눈 웃음이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펠츠는 진정 골프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텍사스 오스틴 저택 겸 연구소에 골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100야드 연습장을 만들었다. 오거스타 내셔널 12번 홀과 페블비치의 14번과 17번 홀 그린, TPC소그래서의 17번 아일랜드 그린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앞 마당에는 400야드 길이의 연습장까지 만들었다.
펠츠는 2019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아침에 일어나 속옷 차림 그대로 연습할 수 있다. 거실에서 나와 웨지 샷을 하는데 38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40년 전에 이런 시설을 가졌다면 얼마나 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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