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나이가 들수록 무거운 짐이 된다. 예전에 넘기던 벙커는 벽이 되고, 해저드는 강처럼 앞을 막는다. 그린까지 남은 거리는 멀고, 버디는 희미해진다. 타수를 줄이려 몸부림쳐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르기 어렵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려 하는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공복(空腹) 선생’ 양용은(53)은 다르다. 그는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 적어도 비(飛)거리는 그렇다. 10년 전보다 5~10야드 멀리 친다. 시니어 투어(50세 이상) 코스 전체 길이가 정규 투어보다 400야드 짧다. 비거리 효과가 더 큰 셈이다. 그가 닿는 거리는, 어쩌면 그의 시간이다.
하와이 자택에서 훈련 중인 양용은은 평균 드라이버 캐리(날아간 거리) 281야드, 발사 각도 13.5도, 스핀양 1640rpm(분당 회전수)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면에서 공이 구르는 거리를 더하면 286~291야드. 10년 전 정규 투어 때를 넘어선다. 2009년 메이저 대회 우승 당시(291.3야드)와도 차이가 없다. 공을 멀리 보내던 그 시절 위력을 재현하고 있다.
양용은은 2022년 미 프로 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에 데뷔했다. 첫해 29위, 그다음 해 15위. 지난해 첫 우승과 함께 6위에 올랐다. 그의 행보는 경쾌하면서도 묵직하다. 그 중심에는 그의 몸이 있다. 키 177㎝ 몸무게 82㎏. 이 체형이 그를 지탱한다. 몸무게가 90㎏이었던 시절, 몸은 무거웠고 발은 아팠다. 그는 9년 전 체중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식사량을 줄이고, 하루 두 끼만 먹었다. 8㎏을 뺐다. 근육이 빠지고 몸 활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몸을 만들었다. 커피와 탄산음료를 멀리했고, 술잔도 내려놓았다.
이제 그의 일상은 간결하다. 오전 11시와 오후 7시, 두 끼 식사로 하루를 버틴다. 아침 겸 점심은 한식이나 샌드위치, 저녁은 생선과 고기, 그리고 샐러드다. 그는 “음식도 습관이다. 한 끼를 거른다고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중이 늘거나 뱃살이 붙으면 한 달에 한두 번 18시간 또는 24시간 단식으로 몸을 다스린다.
양용은은 골프라는 종목을 탐구하는 구도자에 가깝다. 비거리는 클럽 스피드, 발사 각도, 스핀양에 달려 있다. 그는 타구각을 높이고, 발사 각도를 조정하며, 스핀양을 줄인다. 공은 높게, 멀리 날아간다. 공을 치는 각도인 타구각(어택 앵글·attack angle)이 5~6도로 투어 평균(-1.3도 하향 타격)보다 6도 이상 높은 상향 타격(upper blow)을 한다. 공이 날아가는 발사 각도(론치 앵글·launch angle)를 14도 안팎으로 조절하는데 투어 평균 10.9도보다 높다. 여기에 백스핀양도 적어 더 멀리 공을 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을 스위트 스폿에 맞히는 정확성 측정 지표 ‘스매시 팩터(smash factor)’ 수치도 최고 수준이다. 클럽 헤드 스피드로 볼 스피드를 나눈 값인데 스윙 에너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볼에 전달되는지 보여준다.
그는 투어 시절부터 롱 아이언 대신 하이브리드 클럽을 자주 잡았다. 그린에 공을 세우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유다. 다만 샤프트 길이가 길고 가벼워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은 편인데 “아이언 길이와 무게가 비슷한 특수 하이브리드 클럽을 맞춤 제작해 단점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그의 전성기는 2009년이었다. 타이거 우즈를 꺾고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세계 최고 선수를 상대로 거둔 역전승. 그의 이름이 골프 역사에 남았다. 지난해에는 시니어 투어에서 베른하르트 랑거(68)를 연장 끝에 제쳤다. 랑거는 시니어 대회 18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운 전설. 타이거에 이어 랑거까지. 그는 ‘자이언트 킬러’다.
양용은은 “현지 언론이 ‘타이거 사냥꾼’ ‘골리앗 킬러’라 불러주는데 과분한 이름이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랑거를 보며 많이 배웁니다. 랑거는 경기 시작 세 시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연습합니다. 그런 경건한 태도에 감명을 받죠. 그처럼 60세까지 클럽을 놓지 않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올해는 이제 17일 하와이 미쓰비시 일렉트릭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PGA 챔피언스 투어 장정에 들어간다. 클럽을 쥔 그의 손끝에 담긴 힘은 10년 전 그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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