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그린을 읽는 독특한 스타일로 ‘스파이더맨’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카밀로 비예가스(41·콜롬비아)는 젊은 시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화려한 꽃 같은 선수였다. 모델 같은 날렵한 몸매에 거침없는 경기 스타일, 톡톡 튀는 말 솜씨와 자유분방한 생활에 이르기까지 팬들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2014년 8월 윈덤 챔피언십 우승 이후 경기력이 떨어지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게다가 2020년 7월 생후 22개월 된 딸 미아를 뇌암으로 떠나보내는 비극을 맞았다.
그런 비예가스가 슬픔의 심연을 벗어나 우승컵을 든 모습으로 다시 섰다.
13일 버뮤다 사우샘프턴의 포트 로열 골프코스(파71·6828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버터필드 버뮤다 챔피언십(총상금 650만 달러). 비예가스는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6개를 잡아내며 합계 24언더파 260타를 기록하며 2위 알렉스 노렌(스웨덴)을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9년 3개월 만에 투어 통산 5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린 비예가스는 우승 상금 117만 달러(16억원)와 함께 페덱스컵 포인트 500점을 받아 페덱스컵 순위를 147위에서 75위까지 끌어올렸다. 비예가스는 투어 시드 2년과 내년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PGA챔피언십, 그리고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출전권을 따냈다.
올 시즌 11개 대회에서 7차례 컷 탈락했던 비예가스는 지난주 월드와이드 테크놀로지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데 이어 마침내 다시 정상에 섰다.
비예가스는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챔피언 퍼트에 성공하고는 오른 주먹을 쥐고 흔들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우승 인터뷰에서 “저 위에 제 아이가 있어요. 미아가 하늘에서 웃으며 지켜보고 있겠죠”라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주에) 문자 메시지를 500통이나 받았어요.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비예가스는 2008년 투어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차지하고 2014년까지 4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력이 떨어졌고 2020년 6월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 행사 도중 딸이 뇌와 척추 종양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 후 한 달 뒤 딸 미아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비예가스는 지난 시즌 26개 대회에서 12번밖에 컷을 통과하지 못하는 등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 7위까지 올랐던 세계랭킹이 654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예가스는 아내와 함께 ‘미아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자선재단을 통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과 그 가족을 도왔다. 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4개월 만에 우승한 비예가스는 “골프는 내게 훌륭한 것을 정말 많이 주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걷어차기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사흘 연속 선두를 달렸던 노렌은 9·10번 홀(파4)에서 연속 보기 하는 등 마지막 라운드 부진으로 2위(22언더파 262타)로 밀려났다.
마티 슈미트(독일)가 3위(21언더파 263타)였다. 노승열이 공동 72위(5언더파 279타)로 대회를 마쳤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