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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티파니 챈사진 박태성 사진작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자골프 수준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뿐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투어 모두 각자의 강점이 있다. 하지만 LPGA는 전 세계에 중계도 많이 되고, 인터내셔널 투어이기 때문에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경쟁이 있고 매주 상금도 크다. 좋은 투어이긴 하지만 희생도 따른다. 집 생각, 고향 생각 들고 음식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걸 극복하면서 선수 생활, 프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국 골퍼 패티 타와타나낏)” 


9월 21일부터 나흘간 인천 청라에 있는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렸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 우승 상금 2억 7000만원)은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타와타나낏은 LPGA투어 진출이 한국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를 묻는 말에 이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하나금융그룹(회장 함영주)이 주최하고 올해 5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는 9월 초 LPGA투어 크로지 컨시티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민지(27·호주)와 지난해 LPGA투어 올해의 선수와 상금 1위, 최저타상을 받은 리디아 고(26·뉴질랜드)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교포 선수들과 2021년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하며 시즌 신인상을 차지한 패티 타와타나낏(24·태국)과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필리핀의 비앙카 파그단가난(26·필리핀), 홍콩 첫 LPGA투어 선수인 티파니 챈(30) 등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우승은 한국의 이다연(27)이 3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민지와 타와타나낏을 제치고 차지했다.


말레이시아의 애슐리 라우(왼쪽)와 필리핀의 비앙카 파그단가난사진 민학수 기자


세리 키즈의 세계 제패 보고 자신감 가진 동남아 선수들


막연히 한 수 아래로 생각했지만, 적극적인 세계 무대 도전으로 LPGA투어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동남아 선수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대개 한국 아이돌 그룹과 드라마,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한류(韓流) 팬인 동남아 선수들은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박세리(46)와 박인비(35)를 비롯한 세리 키즈가 가족의 헌신과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미국 무대에 도전해 엄청난 연습량으로 단기간에 세계를 제패한 모습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태국 방콕 출신인 타와타나낏은 여덟 살 때 TV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가 우승을 차지하고 주먹을 앞뒤로 흔드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게 ‘나도 하고 싶다’고 졸라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타와타나낏은 골프에 재능을 보여 어렸을 때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갔다. 프로 전향하기 전 2년간 다녔던 UCLA에서 7차례 우승했고, 2019년 LPGA 2부 투어에서 3승을 올렸다. 2020년 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로 국내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다. 태국은 올해 5월 미국에서 열린 여자골프 국가 대항전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다. 예선에서 일본과 한국, 호주를 상대로 전승을 거두었고, 준결승에서 미국에 2승 1패, 결승에서 호주에 3승을 거두었다. 에리야 쭈타누깐(28), 모리야 쭈타누깐(29) 자매와 패티 타와타나낏, 아타야 티띠꾼(20)이 대표 선수로 나갔다.


태국은 맥주 브랜드로 유명한 싱하그룹이 1999년부터 태국의 아마추어부터 프로 골프 대회까지 거의 모든 골프 리그를 후원하고 유망주들을 지원한다. 싱하그룹의 전폭적 지원 속에 연간 수십 명의 주니어 골퍼가 그룹 소유 골프장 등에서 부담 없이 기량을 닦았고, 유망주들은 국제 대회에 참가하거나 조기 유학을 떠났다. 쭈타누깐과 타와타나낏은 방학 때면 미국 주니어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각종 우승컵을 휩쓸며 각각 미국 주니어 골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LPGA투어를 겨냥해 미국 대회 경험을 쌓고 영어 구사 능력을 키우는 맞춤 훈련을 한 것이다.


태국의 패티 타와타나낏사진 KLPGA


홍콩 출신 첫 LPGA투어 선수인 티파니 챈은 한국 골프의 개척자였던 박세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면서 대학 골프 선수로 뛰던 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홍콩 여자골프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올림픽에 참가한 아마추어 선수 세 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챈은 참가 선수 60명 중 37위로 올림픽을 마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1년 3개월 뒤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하타오카 나사(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2018년 꿈에 그리던 LPGA투어 선수가 됐다. 그의 골프 인생은 우연히 시작됐다. “여섯 살 때 부모님과 차를 타고 홍콩에 하나밖에 없던 야외 골프 연습장을 지나갔다. 그런데 우리 세 명이 동시에 ‘골프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연습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열 살 때 홍콩 주니어 대표 선수가 됐다. 당시 홍콩에는 주니어 대회가 1년에 두개밖에 없었다. 처음 중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나갔고 두 번째가 한국이었다. 오래 아마추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동갑인 장하나부터 여섯 살 차이인 최혜진까지 국제 대회에서 만났다. 내가 열네 살 때 미국에서 열린 주니어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 덕분에 데이토나비치컬리지를 거쳐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미국 대학 체육 시스템은 홍콩에는 없었던 훈련 시설과 꾸준한 대회 참가 기회를 제공했다.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미국 대학에서 아마추어 랭킹을 꾸준히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피트니스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가 흥미로웠다. “한국 선수들 체격에 비하면 홍콩 선수들은 작은 편이다. 주니어 시절부터 몸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아직 홍콩에는 이 같은 분야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 분야를 연구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앙카 파그단가난은 2020년 LPGA투어 평균 드라이브샷 1위를 차지하는 등 대표적인 장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참가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땄다. 지금은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유카 사소가 당시 필리핀 국적으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파그단가난도 챈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안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가 다닌 애리조나대학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했다. 파그단가난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메달)을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할 줄은 우리도 몰랐다”며 “한국의 체계적인 대표팀 시스템을 참고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미국 대학 경험이 골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LPGA 2부 투어에서 뛰고 있는 애슐리 라우(말레이시아)는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부모님이 모두 변호사인 그는 “골프를 좋아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승락을 받지 못할 것 같아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대표팀이 되고 싶어 프로 전향을 늦게 했다. 라우는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는 한국 선수들의 LPGA투어 성공은 동남아 국가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며 “이제는 태국 선수들의 성공까지 이어져 점점 더 많은 선수가 세계 무대에 도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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