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31)는 어릴 적부터 프로 무대에 이르기까지 ‘장타 소녀’ ‘에너자이저’ 같은 별명으로 불리며 늘 우승 경쟁을 벌이던 스타 선수다. 우승한 뒤 댄스 세리머니를 하는 쇼맨십도 갖추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져 컷 탈락이 늘어나더니 올해는 단 한 차례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주말 골퍼 스코어 같은 한 라운드 16오버파 88타를 적어내 자동 컷 탈락했다.
3일 제주시 블랙스톤 제주(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원) 1라운드. 장하나는 이날 버디 없이 보기 6개, 더블 보기 5개로 16오버파 88타를 기록, 16오버파 이상은 자동 컷 탈락하는 규정에 따라 2라운드를 뛰지 못하게 됐다. KLPGA투어 자동 컷 탈락은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퍼시픽링크스 PLK 챔피언십 1라운드 아마추어 곽예빈(17오버파 89타)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KLPGA투어는 2010년부터 기준 타수에 관계없이 88타를 치면 자동 컷오프 되는 규정을 적용하다가, 2020년부터 ‘16오버파 컷오프’로 바꾸었다.
장하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사상 첫 파4홀 홀인원(앨버트로스)을 기록하는 등 ‘스윙 머신’ 같은 실력으로 LPGA투어 5승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15승을 거둔 바 있다. KLPGA투어 통산 상금 1위(57억6500만원)이기도 하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2021년 KLPGA투어에서 두 차례 우승하는 등 건재하던 장하나는 지난해부터 발목을 비롯해 몸 여러 군데 부상이 잦아지면서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 7월 이후 참가한 대회 14개 중 11개에서 컷 탈락했고, 올해는 더 심각해졌다. 이번 대회 전까지 출전한 14대회 중 8개에서 컷 탈락하고 5개는 기권했다. 유일하게 상금을 받은 대회는 지난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예선 3경기를 모두 지고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해 상금 319만5000원을 받았다. 사실상 모든 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셈이다.
장하나의 트레이드 마크는 시원시원한 장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4년 한국을 방문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장하나의 샷을 보고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는 칭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장하나는 3승을 거두며 KLPGA투어 상금왕과 대상을 차지했던 2013년에 투어 최고 수준인 266야드 장타를 날렸다. 2년 전만 해도 245야드로 거리가 짧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런데 최고 강점이던 장타 능력이 갑자기 사라졌다. 올해 206야드로 평균 비거리 최하위다. 전문가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실수를 거듭하다 보면 점점 더 코스가 두려워진다”며 “공을 살리려고 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비거리가 뚝 떨어지고 정확성도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첫 단추인 티샷을 제대로 꿰지 못하면서 스코어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장하나 올 시즌 평균 타수는 KLPGA투어에서 유일한 80대인 81.85타다. 19라운드 중 14개에서 80대 타수를 기록했다. 아이언 샷 정확성을 보여주는 그린 적중률도 최하위인 28.9%다. 2년 전 평균 타수 69.90타를 생각하면 한 라운드에 무려 12타씩 더 치고 있는 것이다. 주말 골퍼로 치면 싱글 핸디캡 골퍼가 ‘백돌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장하나는 “지금은 아픈 곳이 없다”며 “포기하지 않고 재기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그는 시즌 초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천천히 걸어가면 돼. 뛰어가면 지치고 다치니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제 웃자. 웃을 일만 있을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 초창기 스윙 코치에게 SOS를 청하는 등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도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환한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과 스윙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좀처럼 예전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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