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호(34)가 우승을 확정 짓는 버디 퍼트에 성공하자 동료 선수들이 달려나와 축하수(水)를 뿌렸다. 곁에 있던 캐디 김유정(30)씨도 함께 물세례를 맞았다. 김씨는 양지호 아내다. 양지호는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지만 프로 데뷔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3년 전 결혼한 뒤 2승을 올렸다. 사랑의 힘은 골프에서도 빛을 발하는 셈이다. 양지호가 18일 일본 지바현 이스미 골프클럽(파73)에서 끝난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KPGA투어·JGTO 공동 주관)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여 합계 20언더파 272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끝까지 접전을 펼친 일본 골프 신성(新星) 나카지마 게이타(22)와 1타 차였다.
3라운드까지 나카지마가 공동 선두, 양지호가 1타 차 공동 3위였다. 나카지마는 아마추어 세계 1위 자리를 87주간 기록했고 올해 프로 무대에 데뷔해 지난주 1승을 거둔 무서운 신예.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양지호는 “한일전이란 느낌이 들어 집중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양지호는 12번 홀(파5)에서 330야드 드라이버 샷을 날리고 2온에 성공해 이글을 잡는 등 선두를 달리다 16번 홀(파4)에서 보기를 해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하지만 마지막 2홀 연속 버디를 잡아 승부를 갈랐다. 나카지마는 17번 홀(파5) 파, 18번 홀(파5) 버디를 했다.
양지호는 지난해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데뷔 15년째, 133경기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에도 캐디는 아내 김씨였다. 김씨는 당시 마지막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우드를 치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끊어가자고 설득하다 우드를 뺏다시피 백에 집어넣고 아이언을 건넨, 그 장면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후 1년 가까이 부진에 빠졌다. 지난주 KPGA 선수권대회에서 거둔 공동 18위가 최고 성적.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다가 주저앉았다.
이날 우승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린 양지호는 “운이 좋아서 첫 우승을 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면 아내가 ‘우승 아무나 하는 것 아니잖아’라고 힘을 줬다”고 했다. 양지호는 불안감을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목표를 여러 차례 보는 나쁜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내가 “오빠 벌써 네 번째 고개 돌렸네!“라고 지적해 줬다 한다. 김씨는 “오빠가 워낙 실력이 좋은데 결혼하고 안정감을 가지면서 실력 발휘를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양지호는 2012년 일본 2부 투어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4년간 일본 투어에서만 활동했다. 양지호는 “사실 첫 일본 투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우승으로 2년간 일본 투어 시드를 얻어 기쁘다”며 “한국 무대에 집중하되 일본 투어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미국과 일본에서 25개 골프장을 운영하는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이스미 골프장을 무료로 대회 코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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