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자 정찬민 프로님 치십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연습 라운드를 함께 도는 동료가 ‘킥킥’ 거리며 장난삼아 공식 대회처럼 소개하는 가운데 정찬민(24)이 드라이버를 잡았다. 부드럽게 휘두르는 것 같은데 그가 친 공이 “땅~”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300야드 지점에 있는 벙커를 가볍게 넘겨 350야드 지점에 공이 떨어졌다. 정찬민은 188cm의 키에 100kg이 넘는 거구, 그리고 턱수염까지 길러 강인한 인상이었지만 동료 장난에 “이러면 저 기권해요”라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우리금융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둔 10일 오전 경기도 여주의 페럼 컨트리클럽. 공식 연습일인 이날 지난주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데뷔 2년 만에 우승한 정찬민은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초장타자의 출현에 많은 팬 관심이 KPGA 투어에 쏠리고 있다.
대회 주최 측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최근 3개 대회 연속 톱10의 성적을 거두고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임성재(25)와 KPGA 투어를 대표하는 베테랑 박상현(40)과 함께 정찬민을 1·2라운드에 함께 경기하도록 했다.
이런 정찬민을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유심히 지켜보고 꿈을 키워준 지도자가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박준성(46) 코치. 그는 부산 아시아드 컨트리클럽에서 정찬민을 비롯해 남녀 프로 골퍼와 아마추어 선수 등 10여명을 지도하고 있다. 고교 시절 태극마크를 달았던 정찬민은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을 끝내고는 지금까지 박 코치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340야드를 가볍게 넘기는 한국의 초장타자 정찬민(오른쪽)과 박준성 코치. /민학수 기자
박 코치도 많은 선수와 학부형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는 “정말 감개무량하네요. 정 프로는 이제부터 시작이죠”라고 했다. 미 PGA투어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장타 능력에 섬세한 쇼트게임과 퍼팅 능력을 장착하기 시작한 정찬민의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해온 박 코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찬민이 엄청난 장타를 치면서도 공을 똑바로 보내는 비결이 가장 궁금했다. 박 코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 프로처럼 멀리 치는 장타자가 OB 구역이 많은 국내 코스에서 드라이버를 잡을 곳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드라이버를 안 잡으면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드라이버를 마음껏 칠 수 있도록 코스에 따라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 2부 투어에서 뛰던 시절 주로 공이 왼쪽으로 급하게 휘는 훅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드라이버 샷 구질을 낮게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로 페이드(low fade) 구질로 바꾸었다. 비거리는 20m가량 줄지만 왼쪽으로 휘는 공은 완전히 배제했다. 왼쪽은 닫아 놓고 칠 수 있도록 했다. 1부 투어에선 비거리를 좀 더 내기 위해 탄도를 더 높여서 하이 페이드를 치거나 클럽을 약간 닫아 놓고 오른쪽으로 밀어치는 푸시볼을 칠 수 있도록 했다.”
공을 똑바로 치는 비결은 30cm의 비밀에 있다고 한다. 임팩트 구간인 볼 뒤 20cm부터 볼이 맞고 나서 10cm 지점까지 클럽 헤드가 목표 방향을 향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일찍 손목을 돌리면 장타를 치는 선수들은 공이 아주 심하게 왼쪽으로 감긴다.
정찬민과 박 코치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코치는 “국가대표 상비군 지도자 시절 송암배에 출전한 정찬민을 처음 보았다. 몸이 부드럽고 공을 멀리 쳤다”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팀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 들어왔다. 국가대표를 지도하면서 임성재, 정찬민 같은 훌륭한 재목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기억했다.
박 코치는 미국에 유학하던 고교 시절 타이거 우즈와 함께 라운드를 해본 적도 있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PGA투어에서 뛰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가 부치 하먼, 데이비드 레드베터, 행크 헤이니 등 이름만 대면 알 최고의 지도자들에게 모두 배워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2부 투어에 몇 차례 뛰어보는 데 그쳤다. 그래서 한국의 더 많은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걸 돕는 코치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정찬민은 지난 3월 칠레에서 열린 미 PGA 2부 투어 참가를 앞두고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박 코치의 조언이 있었다고 했다. 정찬민은 “프로 골퍼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코치님 말씀이 와 닿아서 바로 기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코리안 헐크’로 불리던 정찬민은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세계 1위 욘 람을 빗댄 ‘정람’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박 코치는 “PGA투어에서 우승하고 싶은 찬민이의 꿈을 함께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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