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와 캐디가 번갈아 가며 몸을 최대한 바짝 엎드린 채 그린을 읽는다. 마치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이 빌딩을 기어오르는 동작과 비슷하다. 그 간절한 마음가짐과 태도는 불교의 오체투지(五體投地)를 떠올리게 한다.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턴 헤드 아일랜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총상금 2000만달러)에서 우승한 맷 피츠패트릭(29·잉글랜드)은 퍼팅 라인이 까다롭다 싶으면 아예 배를 바닥에 댄 채 퍼팅 라인을 읽는다. 그는 합계 17언더파 267타를 기록하고는 3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회 2연패에 도전하던 조던 스피스(30·미국)를 눌렀다. 18번홀(파4)에서 열린 3차 연장에서는 퍼팅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두 번째 샷을 홀 30㎝에 붙여 버디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승 상금은 360만달러(약 47억원).
배를 대고 그린을 읽는 게 아마추어 같다고? 지난해 메이저 대회인 US 오픈에 이어 PGA 투어 2승째를 올린 그는 PGA 선수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퍼팅 실력을 뽐낸다. 올 시즌 3m 이내 퍼팅 성공률 92.57%로 1위다. 이번 대회에서도 온그린 시 퍼팅 수 2위(1.569개)였다. 피츠패트릭은 “퍼팅 라인을 정확히 읽고 그 라인대로 공을 정확히 보낼 수 있는 스트로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바짝 엎드려서 보면 미세한 그린 주변 라인과 잔디 결이 역결인지 순결인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와 함께하는 40년 경력 베테랑 캐디 빌리 포스터도 같은 방법으로 퍼팅 라인을 확인한다. 이렇게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다 보니 피츠패트릭은 ‘슬로 플레이’를 한다는 핀잔을 받기도 한다.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오랜 골프 격언이 있다. 돈을 벌어주는 퍼팅이 왜 말을 듣지 않는가 원인을 분석한 적이 있다. 마크 브로디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투어 선수들의 퍼팅 실수를 분석한 결과 40%가 그린을 잘못 읽어서 나온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나머지 40%는 스트로크 실수, 20%는 거리 측정 실수였다.
공이 있는 곳부터 홀까지 한번 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린을 읽을 수 있는 비범한 선수도 있다. ‘골프 여제’ 박인비(35)가 그랬다. 하지만 모두 이런 신기(神技)를 지닌 건 아니다. 피츠패트릭에 앞서 대회마다 바지 몇벌씩 뜯어지던 ‘원조 스파이더맨’이 있다. PGA투어에서 2008년부터 2014년에 걸쳐 4승을 거둔 콜롬비아의 카밀로 비예가스(41)다. 그는 “퍼팅 실력이 떨어져 늘 고민이었는데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린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좋아졌다. 그린 옆에 벙커가 있으면 벙커에서 그린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점차 스파이더맨처럼 지면에 엎으려 그린을 읽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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