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브라이슨 디섐보(29·미국)는 지난 4년간 골프 600년 역사에 꼽을 만한 흥미진진한 실험을 했다. 2018년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4승을 거두며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언제나 우승할 수 있는 ‘골프왕’을 꿈꾸며 신체 개조 실험에 나섰다. 2019년 말부터 20㎏ 가까이 체중을 늘려 드라이버 샷 400야드라는 압도적인 장타를 칠 수 있는 몸을 만들었고, 스윙 스피드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극단적 훈련을 했다. PGA투어 선수들은 거들떠보지 않던 장타대회까지 나갔다. 그는 400야드 안팎의 파 4홀을 티샷 한 번에 공을 그린에 올리거나, 그린 근처에 떨어뜨려 웨지로 공략하면 늘 우승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 4홀도 원온이 가능하면 파 5홀 2온은 기본이 된다. 그러면 수많은 도박사가 도박에 참가해도 늘 돈을 따는 것은 도박판을 운영하는 ‘하우스’인 것처럼, 자신도 골프 게임의 하우스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구상이었다.
PGA투어 최장타자가 된 그는 2020년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을 포함해 2승, 2021년 1승을 거두며 꿈에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디섐보는 지난해 봄 손목 수술을 받았고 현기증으로 얼마 뒤 전신 정밀검사를 받았다. 소화관 염증 수치가 크게 높아졌고 콧속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힘겹게 찌웠던 살을 빼기 시작했다. 지난해 식단을 관리하며 한 달 만에 몸무게를 8㎏ 이상 줄였다. 지난 2월엔 ‘장타 포기 선언’을 했다.
디섐보의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으로 경제 칼럼니스트 겸 벤처캐피털사 컬래버레이티드 펀드의 파트너로 활동하는 모건 하우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돈의 심리학’이란 저서를 통해 “금융 위기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금융 위기를 금융이라는 렌즈가 아닌, 심리학과 역사의 렌즈를 통해서 볼 때 더 잘 이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돈을 다룰 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잘못된 행동 원인, 편향, 결함을 파고들었다.
컬래버레이티드 펀드의 파트너 모건 하우절. 사진 모건 하우절
버핏 재주는 투자…비밀은 시간
워런 버핏은 투자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버핏은 연평균 22%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역대 최고의 수익률은 아니다.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이끈 수학자 출신의 투자자 짐 사이먼스는 1988년 이후 연간 66%라는 놀라운 수익률로 돈을 불려 왔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사이먼스의 순자산은 201억달러(약 26조원), 버핏 자산(845억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 차이에 거대한 부(富)를 일구는 비결이 담겨 있다. 버핏은 열 살 때부터 진지하게 투자를 시작했다. 버핏이 서른 살이 됐을 때 이미 순자산이 100만달러(약 13억원)에 이르렀다.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현재의 1000만달러(약 130억원)에 이른다. 버핏의 순자산(845억달러) 가운데 무려 815억달러(약 105조9500억원)는 그가 사회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 60대 중반 이후에 생긴 것이다. 성공의 진짜 열쇠는 그가 무려 75년 동안 꾸준히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하우절은 “만약 버핏이 30대에 투자를 시작해 60대에 은퇴했다면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버핏의 재주는 투자였지만 그의 비밀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바로 복리의 원리다. 복리법은 일정 기간에 발생한 이자와 처음 원금을 더한 원리합계가 다음 기간의 원금으로 되어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복리이자에 의한 원리합계는 기간에 대한 지수함수이기 때문에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하우절은 주장한다. “경기 순환이나 주식 트레이딩, 섹터 투자 등에 관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책은 ‘닥치고 기다려라’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최고 수익률을 올리는 것만이 훌륭한 투자인 것은 아니다. 꽤 괜찮은 수익률을 계속해서 올리는 게 더 훌륭한 투자다. 시간의 힘이, 복리의 힘이 너희를 부유케 할 것이다.”
제시 리버모어는 1877년에 태어나 서른 살이 됐을 때 그의 재산은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주식시장 트레이더였다. 1929년 10월 일주일 동안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3분의 1이 사라지던 ‘대공황기’에 리버모어는 자산 가치의 하락에 베팅해 하루 만에 30억달러(약 3조9600억원) 이상에 해당하는 돈을 벌었다. 주식시장 역사에서 최악의 달 중 하나로 기록됐던 그때 리버모어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33년 리버모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29년 대박을 터뜨린 리버모어는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점점 더 큰 베팅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됐으며 결국 주식시장에서 모든 것을 잃고 파산했다.
리버모어는 이렇게 말했다. “투기꾼이 자만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아무리 큰돈을 지불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많은 똑똑한 사람이 부서진 것은 모두 자만 때문이다. 참 돈이 많이 드는 병이다. 어디에 있든 누구든 감염될 수 있다.”
부자 되기보다 중요한 건 부자로 남는 것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자로 남는 것이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파국을 피해 살아남는 핵심이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의 붕괴로 가계 자산이 6조2000억달러(약 8190조원)감소하고, 2008년 주택 시장 거품이 꺼졌을 때는 8조달러(약 1경570조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제 거품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하우절의 대답은 이렇다. “’자산에는 단일한 합리적 가격이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개념이다. 투자자들이 서로 다른 목표와 시간 계획을 갖고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가격이 다른 사람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다. 서로 눈여겨보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품은 가치 평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단기 투자자가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투자 시간 지평이 줄어드는 현상의 징후에 가깝다. 투자 후 팔아 이익을 얻기까지의 기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거품이 피해를 주는 것은 장기 투자자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게임을 하는 단기 거래자들로부터 신호를 읽기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이 두 투자자는 서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같은 운동장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둘의 경로가 충돌하면 다치는 사람이 나온다.
본인 게임에 집중해야
모건 하우절이 ‘돈의 심리학’을 통해 전하려는 투자의 지혜를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이렇게 비유한다. “PGA투어와 장타대회는 서로 다른 게임이다. 워런 버핏과 짐 사이먼스, 제시 리버모어는 서로 다른 게임을 했다. 주식시장은 마라톤, 100m 전력 질주, 장애물 넘기와 같은 다양한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하나의 트랙에서 뛰는 것과 같다. 마라톤을 뛰려고 참가했는데 100m 달리기하는 사람이 전력 질주하는 것을 보고 같이 속력을 높여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행동한다. 철학이 없이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투자자는 본능적으로 단기적인 수익률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00m 전력 질주하는 옆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스피드를 높인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 달리게 되면 경기를 망치게 된다. 투자에서도 인생에서도 본인의 게임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