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의 등장을 두고 흑인 골퍼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본 사람들이 있었다. 백인 부자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던 마스터스에서 우즈는 1997년 기존의 모든 기록을 깨고 우승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입었다. 우즈의 피부색은 혁명이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흑인 청소년들이 우즈의 성공 모델을 따라 한다면 프로 농구와 미식축구처럼 많은 흑인 스타 선수가 골프에서 활약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즈가 마스터스를 우승하고 최고의 골퍼로 20년 넘게 활약했지만, 미국에서 그의 반의반의 반만이라도 활약한 흑인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즈의 등장은 흑인 골퍼의 성공 시대를 예측하게 해주는 신호탄은 아니었다. 우즈의 아버지는 미국 대학에서 야구 선수를 했고 그린베레 출신으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그는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겼고 아들 우즈가 태어나자마자 골프채를 손에 쥐여주었고, 의도적으로 요람에 있는 아들 앞에서 골프 연습을 했다. 대학 야구 선수 시절 인종 차별을 뼈저리게 겪은 그는 전형적인 백인 스포츠인 골프에서 성공한다면 역사를 바꾼 선수라는 명예와 함께 부(富)도 거둘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골프는 대다수 흑인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스포츠다. 우즈 아버지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집요한 흑인 골프 대디가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골프는 우즈를 통해 역동적이고 도전할 만한 멋진 스포츠로 탈바꿈했다. 전 세계에 골프 열풍이 일어났고, 전 세계 수많은 ‘타이거 키즈’가 우즈처럼 되고 싶어 했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부는 거센 태풍(泰風·태국 바람)에 우즈도 큰 역할을 했다. 전 여자 골프 세계 1위 에리야 쭈타누깐과 언니 모리야 쭈타누깐을 비롯해 2021년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자 패티 타와타나킷, 지난해 2승을 거둔 신인왕 아타야 티띠꾼에 이어 올해 300야드 장타자 나타끄리타 웡타위랍까지 가세하면서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던 LPGA투어 판도를 뒤흔들었다.
태국인 어머니를 둔 우즈를 향한 태국인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즈가 태국에서 친선 경기를 하면 인산인해를 이루며, 휴가를 와도 국빈급 대우를 받는다. 타와타나킷은 “우즈의 경기를 TV로 보며 골퍼의 꿈을 키웠다”며 “태국 선수 대부분이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태국은 맥주 브랜드로 유명한 싱하그룹이 1999년부터 태국의 아마추어부터 프로 골프 대회까지 거의 모든 골프 리그를 후원하고 유망주들을 지원하고 있다. 싱하그룹의 전폭적 지원 속에 연간 수십 명의 주니어 골퍼가 그룹 소유 골프장 등에서 부담 없이 기량을 닦았고, 유망주들은 국제 대회에 참가하거나 조기 유학을 떠났다. 우즈를 보며 꿈을 키운 태국 청소년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탄탄하게 마련돼 있었던 것이다.
우즈 현상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어머니의 나라 태국에서 이렇게 꽃을 피울 것이라고 내다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예측은 들어맞고 어떤 예측은 들어맞지 않는다. 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의 선거 결과를 맞힌 데 이어 2012년 오바마의 재선 과정에서 50개 주 선거 결과를 모두 맞힌 ‘예측의 귀재’가 있다. 야구 선수의 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페코타(PEKOTA)를 개발하고 정치 예측 블로그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com, 538·미국 상원 100명과 하원 435명에 행정수도 워싱턴의 컬럼비아 선거구 3명을 합친 수)를 개설한 네이트 실버(Nate Silver)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2002년 회계컨설팅 회사인 KPMG에 입사한 그는 카지노에서 통계 확률 기법을 활용해 수만달러를 딴 뒤 회사를 그만두고는 좋아하는 ‘예측’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2012년 미국 대선 직전 그가 펴낸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은 왜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들의 예측이 그토록 자주 빗나가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예측이 가능할지를 다룬다. 그도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전을 예상했지만,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12월7일 진주만 공습이 미국 역사에 영원히 불명예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공격을 암시하는 많은 신호가 있었지만, 미국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1941년 11월 미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파탄 난 데 이어 미식축구장 여섯 개를 합쳐 놓은 엄청난 크기의 일본 항공모함 함대의 무선 전송이 완전히 사라졌다.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신호가 뚜렷하게 있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다.
미국은 일본이 군사 공격을 한다면 러시아나 영국의 아시아 점령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와이에서는 오히려 8만 명에 이르는 일본 거주자가 군사 기지 및 라디오 방송국, 파인애플 농장 등을 불시에 공격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런 ‘파괴 공작’에 대비해 비행기를 차곡차곡 쌓듯이 모아놓았고 배들도 가깝게 붙여놓았다. 미국은 철저히 미국의 눈으로 신호를 해석했다. ‘일본의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뒤 9·11 테러를 앞두고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적지 않은 신호가 있었다. 비행기가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적어도 10건은 있었고, 세계무역센터는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해 7월 알카에다의 테러 목표가 미국 영토 안에 있다는 내용의 경고를 받았다. 2001년 8월 16일 체포된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겨우 50시간 남짓한 비행 훈련을 받고는 보잉 747기의 시뮬레이션 훈련을 받으려 시도했다.
‘9·11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네 가지 시스템의 실패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실패, 역량의 실패, 관리의 실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실패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버는 금융위기, 정치, 야구, 기상, 지진, 경제 예측, 감염병, 체스, 포커, 주식, 지구온난화, 테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신호와 소음의 변주곡들을 들려준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예측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정보의 대부분은 그저 소음일 뿐이고 객관적 진리의 양은 상대적으로 일정하기 때문이다. 실버는 통계학의 ‘베이즈 정리(Bayes’s Theorem)’를 이용해 신호를 읽어낼 확률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상식에 기반을 둔 사전 확률을 뽑고 나서 새 정보가 나오면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을 골라 적용해 사후 확률을 개선해 나가는 방식이다. 그러자면 한 가지 원칙만 고집하는 ‘고슴도치’형 전문가가 돼서는 안 된다. 신중하면서도 이론보다는 관찰을 중시하는 ‘여우’가 돼야 한다.
끊임없이 환경이 바뀌고 소음이 넘치는 투자의 세계에서 올바른 신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여우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실버는 조언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