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 72홀 감동의 완주
마지막 챔피언조 출발이 3시간가량 남은 오전 10시 50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번 홀. 평소 같으면 마스터스 모자를 비롯해 기념품을 사느라 한창일 팬들이 1번 홀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기다렸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가 마지막 라운드에 늘 입고 나오는 빨간 티셔츠에 검정 바지를 갖춰 입고 등장하자 박수와 함성이 우레처럼 진동했다. 아직 성치 않은 다리로 절뚝절뚝 매 홀 그린을 걸어 오를 때마다 팬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내며 “생큐! 타이거”를 외쳤다. 이런 광경이 마지막 18번 홀에서 모자를 벗고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이어졌다. 성적은 관계없었다. 그에겐 좀처럼 보기 드문 낯선 점수였던 더블보기를 하고 툭하면 보기를 해도 응원하는 박수가 쏟아졌다.
25년 전인 1997년 마스터스에서 골프의 아이콘으로 오거스타를 정복자처럼 누비던 것을 시작으로 다섯 차례 그린 재킷을 입으며 숱한 명장면을 남긴 그지만 이번 대회가 주는 감동의 깊이는 또 달랐다.
지난해 2월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이후 1년 4개월 만에 기적같이 복귀해 마스터스 72홀을 완주한 것만으로도 우즈는 또 한번의 전설을 쓴 것이다.
우즈는 11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더블보기 1개, 보기 5개, 버디 1개로 6타를 잃고 13오버파 301타(4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라운드에서 1언더파의 성적으로 “우승 경쟁을 하고 싶다”던 꿈이 이루어지는가 싶었지만 2라운드 2오버파, 3라운드 6오버파, 4라운드 6오버파로 갈수록 부진했다. 6오버파 78타는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기록한 가장 나쁜 점수다. 경기를 마친 우즈에게 이번 대회는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하자, 우즈는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고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며 “끔찍한 교통사고 이후 많은 이가 도와주고 응원해줘서 필드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우즈는 2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나머지 홀에서는 전날처럼 퍼팅 난조로 힘을 쓰지 못했다. 4∼6번 홀에서 3연속 보기를 했고 11번(파4)과 14번 홀(파4)에서도 1타씩 잃었다.
우즈는 17번 홀(파4)에서 그린에 세 번 만에 공을 올리고 나서 10m 거리에서 3퍼트를 해 더블보기를 했다.
우즈는 “지난해 12월 아들 찰리와 즐겁게 라운드(이벤트 대회 PNC챔피언십)를 했던 것과 이번은 전혀 달랐다”며 “내가 연습과 라운드로 몸을 망가뜨리면 우리 팀(의료 및 재활팀)이 나를 다시 뛸 수 있는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 반복됐다”고 했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위대한 챔피언들의 역사가 가득한 마스터스에 다시 서서 팬들과 만난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도 했다.
우즈가 예상을 깨고 깜짝 출전하면서 이번 마스터스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입장료와 기념품 판매 등 대회 수익금 규모에 따라 3라운드가 열리는 날 상금 규모를 결정하는 마스터스는 올해 역대 최다인 1500만달러(약 184억원)를 상금으로 내놓았다. 지난해 1150만달러보다 350만달러 늘었다.
대회 기간 우즈가 2000년 US오픈부터 2001년 마스터스까지 메이저 4개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한 ‘타이거 슬램’ 때 사용한 타이틀리스트 아이언 세트가 경매에서 515만6162달러(약 63억원)에 낙찰됐다. 골프 관련 기념품으로는 역대 최고가다. 종전 기록은 호튼 스미스가 1934년과 1936년 마스터스 우승 당시 입었던 그린 재킷이 2013년 68만2000달러에 팔린 것이었다.
우즈는 7월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 디오픈에 출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 달 열리는 PGA 챔피언십과 6월 US오픈은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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