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파잉 시리즈 1위로 합격
항공 엔지니어인 아버지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안나린(25)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이 목표였다.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여러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프로 골퍼가 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 골프 선수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최혜진(22)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딸에게 ‘나의 목표’를 만들어 줬다. 천장과 책상, 잠자리 등 늘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은 4가지 목표는 ‘국가대표, 세계 1위, 올림픽 금메달, LPGA 진출’이었다.
주니어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던 아버지가 캐디를 맡은 홍예은(19)은 올해 LPGA 2부 투어에서 활약한 데 이어 1부 투어 진출 꿈을 이루고는 깡충깡충 뛰었다.
한국 여자 골프 성장의 최대 원동력이었던 ‘도전 DNA’가 다시 깨어났다. 13일 미국 앨라배마주 도선의 하이랜드 오크스 골프코스(파72)에서 막을 내린 미국 여자 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서 이들 한국 선수 3명이 내년 시즌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안나린은 8라운드 합계 33언더파 541타로 1위, 최혜진은 공동 8위(17언더파), 홍예은은 공동 12위(13언더파)에 올랐다. LPGA 퀄리파잉 시리즈는 2주에 걸쳐 8라운드 144홀 성적을 합산해 최종 45위 안에 든 선수들에게 내년 시즌 LPGA 투어 출전권을 준다. 상위 20위 이내에 들면 거의 모든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올해는 공동 41위까지 총 46명이 내년 LPGA 투어 출전권을 얻었다.
한국 여자 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각각 2승과 10승을 올리며 실력이 검증된 안나린과 최혜진이 ‘따뜻한 둥지’를 벗어나 도전에 나서면서 LPGA 투어에서 주춤하던 한국 여자 골프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98년 박세리의 미 LPGA 투어 진출 이후 세계 무대를 장악한 한국 여자 골프는 올해 그 지배력이 급속히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여름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자 흔들리는 한국 여자 골프의 위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쏟아졌다. 한국 선수들은 올해 7승을 합작하는 데 그쳐 6년 연속 지켜온 최다승 국가 자리를 미국(8승)에 내줬다. 고진영(26) 혼자 5승을 거두고 박인비(33)와 김효주(26)가 각각 1승씩 올렸을 뿐 신예들 활약이 눈에 띄지 않았다. 11년 만에 한국 선수의 메이저 대회 우승도 없었고, 지난 2019년까지 5년 연속 이어진 한국 선수의 신인상 수상도 맥이 끊겼다. 코로나로 2020년과 2021년 통합 시상된 신인상은 태국의 장타자인 패티 타와타나낏이 차지했다.
한화골프단 창단 감독을 지낸 김상균씨는 “KLPGA 투어가 연간 30개 대회에 상금 랭킹 60위까지 1억원 넘는 상금을 벌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선수들의 도전 의식은 오히려 약해졌다”며 “국내 정상급 선수인 최혜진과 안나린의 도전은 이런 흐름을 바꿔 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내년 LPGA 신인상을 놓고 경쟁하면서 실력을 키워간다면 국내 신예 선수들도 도전 의식을 갖게 되는 선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올해 퀄리파잉 시리즈에는 뛰어난 선수가 많았다. 올해 레이디스 유러피언 투어(LET)에서 대상과 신인상을 석권한 18세의 아타야 티티쿨(태국)이 3위(26언더파), 세계 랭킹 15위인 후루에 아야카(일본)가 7위(18언더파), 2019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자 시부노 히나코(일본)가 공동 20위(10언더파)로 LPGA에 입성해 신인상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5타 차 2위로 최종 8라운드를 출발했던 안나린은 버디 7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이며 이날 타수를 줄이지 못한 폴린 루생-부샤르(프랑스·32언더파)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선수로는 2018년 이정은 6(25) 이후 3년 만에 1위로 퀄리파잉 시리즈를 통과했다.
안나린은 “수석 합격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주 기쁘다. 골프를 시작하면서 LPGA에서 뛰고 싶었던 꿈이 이뤄졌다. 내년에 TV에서만 보던 선수들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기할 생각을 하니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올해 국내서 우승이 없었던 최혜진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좋은 경험을 한 시즌이었고 그 덕분에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LPGA퀄리파잉 시리즈에 나설수 있었다”며 “어릴때부터 꿈이었던 LPGA투어에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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