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영 언니처럼 주눅들지 않고 인비 언니처럼 집중하고 싶어요”
/민학수 기자 강민구배 제44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정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워낙 골프를 잘 쳐 ‘무서운 중학생’으로 통하는 이정현(14·운천중2)은 목소리만 들으면 수줍음 잘 타는 여중생 같다.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말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면 ‘무서운 중2’ 맞는다. 지난주 강민구배 한국여자 아마추어 골프선수권 대회에서 고등학생·대학생 언니들과 경쟁을 벌여 연장전 끝에 정상에 오른 이정현에겐 자신의 은퇴 시점으로 잡아 놓은 서른 살까지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
/이정현 인스타그램 지난 4월 뉴질랜드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가한 이정현이 휴식 시간에 해변을 달리는 모습. |
“국가대표 김주연 코치처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싶고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싶고, 프로 대회 100승, 평균 타수 5언더파를 이루고 싶어요.” 골프 여제라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박인비를 합쳐 놓아야 이룰 수 있는 어마어마한 목표다.
이정현은 올해 키가 부쩍 자라 170㎝가 됐다. 달리기를 좋아해 평소 하루 7~8km씩 일주일에 3일 정도 달린다. 마라톤 대회에서도 뛰어 봤다. 그에게 모범으로 삼는 선수가 있느냐고 묻자 “저처럼 중2 때 한국여자 아마 선수권에서 우승한 김세영 언니처럼 주눅이 들지 않는 플레이도 닮고 싶고, 올림픽 금메달을 딴 박인비 언니처럼 포커페이스로 상대를 질리게 하는 집중력도 배우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정현이 지난 15일 강민구배 한국여자 아마추어 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민학수 기자 |
지금까지 성장세를 보면 한국 여자골프에 또 한 명의 기대주가 등장한 것은 틀림없다. 이정현은 중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송암배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에서 대회 사상 최연소로 우승했고, 미국에서 열린 ‘스피릿 인터내셔널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4위로 통과해 태극 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올해는 블루원배 한국주니어 선수권에서 여중부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이정현은 만 13세 11개월 1일의 나이로 김세영(만 13세 5개월 9일)에 이어 역대 둘째 어린 우승자가 됐다.
이정현은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도 아마추어 대표로 초청받았다.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초청 형식으로 네 차례 프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컷 탈락한 적이 없다. 230m 안팎의 드라이버샷을 날리고 아이언샷과 퍼팅까지 고른 기량을 갖고 있다. 그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집중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민학수 기자 강민구배 제44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정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7세 때 골프를 시작한 이정현은 초등학교 3학년 말 뉴질랜드로 골프 유학을 떠나 1년 머물고서 귀국해 5학년 때 주니어 상비군에 뽑혔다. 뉴질랜드 유학 시절에는 컴컴한 밤 연습장에서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공을 비춰가며 샷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자 연습장 측에서 이정현을 위해 라이트 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골프채를 놓으면 영락없는 또래 중학생으로 돌아가는 이정현은 “핸드폰과 TV 보는 게 즐겁고, 떡볶이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팝스타 앤마리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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