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영이 지난 11월 25일 미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photo 뉴시스 |
“저는 왜 세계 1위가 안 될까요?”
두 달 전 김세영(26)은 국제전화로 스윙코치인 이경훈 프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답답한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너무 화려한 경기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 코치는 답했다.
짧은 이 대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김세영은 한국에서 미국 무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우승을 4라운드 18번홀 이글, 연장전 샷 이글, 마지막 라운드 홀인원 등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이뤄냈다. 한국에선 5승을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했고, 미국에서는 연장전 4번을 모두 승리했다.
마지막 날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이렇게 화끈한 플레이를 펼치는 그에겐 ‘빨간 바지의 마법사’란 애칭이 제격이다. 2018년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는 LPGA투어 72홀 최저타 우승 기록(31언더파 257타)도 세웠다.
김세영은 지난 11월 25일 미 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마지막 18번홀에서 8m 버디 퍼트를 넣으며 10승 고지에 올랐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여자골프에서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0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4명밖에 없다. 박세리(42·25승), 박인비(31·19승), 신지애(31·11승), 그리고 김세영이다. LPGA투어에 데뷔한 2015년 3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2016년 2승, 2017년 1승, 2018년 1승, 2019년 3승을 거두었다.
워낙 믿기 힘든 기적 같은 드라마를 수시로 쓰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세계 1위 등극과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세계 1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꾸준한 성적을 내야 한다. 메이저대회는 코스 세팅이 까다롭다. 공격 능력 못지않게 어려운 홀에서 타수를 잃지 않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이 필수다.
김세영의 투어 통계를 보면 ‘모 아니면 도’에 가깝다. 우승 경쟁을 벌이지 않을 땐 2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지난 5년간 상금순위는 2~10위였는데 평균타수는 8~15위를 기록했다. 꾸준히 안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기회가 오면 한 방을 날리는 홈런 타자에 비유할 수 있다.
두 달 전 이 코치와 통화를 하고 나서 김세영의 성적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세영은 지난 9월 말 LPGA투어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했다. 하지만 그 후 이번 시즌 최종전 우승까지 5개 대회 연속 10위 이내 성적을 거두었다.
국내 투어 시절 별로 알려지지 않은 김세영의 별명이 있다. ‘3+3’이다. 파4홀에서 3온3퍼트를 해 더블보기를 자주 하는 모습에서 나온 별명이다. 버디도 쉽게 잡아내지만 더블보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정상급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김세영은 지난 2년간 집중적인 연습으로 원래 구질인 드로(draw) 외에 페이드(fade)도 잘 구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시즌 최종전에서는 물에 빠지거나 타수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페이드 샷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러프에 공이 들어가면 묘기 샷을 날리기보다는 확실하게 빼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달라진 김세영은 “언제나 홀을 향해 멋진 샷을 날리고 싶다는 욕망은 크지만 돌아갈 땐 돌아가고 참을 땐 참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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