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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골프 해설위원 김재열

"아버님 뜻대로 교수가 됐다면 이렇게 좋아서, 미쳐서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룬 한국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한국 골프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이뤘잖아요. 그 현장에 있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에요."

지난 22일 서울 목동 SBS방송국에서 만난 골프 해설위원 김재열(59)씨는 좋아하는 일을 신바람 나게 하고 있다. 그는 이날 한 주의 골프 소식을 1시간 분량으로 전해주는 프로그램 'SBS골프'를 촬영했다. 22년째다. 1991년 '금요골프'란 이름으로 시작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국내 최장수 골프 해설가인 김재열 SBS 골프 해설위원은 지난 23년간 한국·미국·유럽·일본 투어를 1000라운드 이상 생중계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을 현장에서 함께한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 위원은 이 프로그램에 합류한 1998년 8월 7일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다. 1000회를 훌쩍 넘겼다는 의미다. 그는 1997년 한국스포츠TV에서 골프 중계를 시작해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정상에 서는 경기를 해설하고 SBS에 스카우트돼 오늘에 이르렀다. 윤세영(86) SBS 미디어 명예회장은 지난달 강원도 양양에서 열린 설해원 레전드 매치에서 김 위원을 보고는 주변에 "내가 직접 스카우트한 친구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미국과 한국의 골프 대회를 생중계한 경기는 1000라운드가 넘는다. 전문 해설자가 많지 않던 시절 일주일 8차례 생중계를 한 적도 있다. "새벽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를 중계하고 낮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를 하는 식이었어요. 몸은 힘들어도 한국 선수들 활약하는 소식을 전하는 게 신났어요."

그와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다.

골프 대회가 열리는 때면 아침 일찍 공 몇 개를 들고 그린마다 공을 굴려보며 경사를 읽고 메모하곤 한다. 선수와 캐디가 사용하는 야디지북(코스 정보가 세밀하게 담긴 책)에 승부처가 될 만한 곳을 자세히 적어 놓는다. 그와 함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해설을 하는 박세리는 "'또 알아볼 게 남았어요? 다 아시면서'라고 농담을 하지만 마음속으론 정말 정성이 대단하구나 감동한다"고 했다. 최경주도 "코스와 선수들 동향을 열심히 체크하는 모습이 전문적"이라고 했다.

그의 골프 해설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엉뚱하게 "나도 세리 키즈"라고 했다. 세리 키즈는 1998년 박세리(42)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골프를 시작한 박인비, 신지애, 이보미 등 1988년생 용띠들이 주축이다.

김 위원은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한국스포츠TV 중계를 본 분들 추천으로 SBS에 스카우트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지금은 고맙게도 박세리 프로가 저와 함께 해설을 하고 있으니 박세리를 빼고는 제 골프 해설 경력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를 이어 교수가 되라는 집안의 기대를 짊어지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운명처럼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중앙대학교 총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수석 부의장 등을 지낸 김민하(85) 박사의 3남 중 장남이다.

운명은 생각하지 않았던 골프 쪽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중앙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82년 테네시 주립대학을 거쳐 베텔 칼리지에 편입했다. 하필 룸메이트가 대학 골프선수였다. 한국에서 연습장 몇 차례 가본 게 전부였던 그는 룸메이트의 연습 파트너를 하면서 골프에 정식 입문했다. "대학 풋볼경기장에서 서로 반대편에 서서 100개씩 공을 쳐주는 거예요. 그 친구 연습을 도와주다보니 1년 만에 70대 타수를 기록하게 됐어요."

리우올림픽 당시 박인비(왼쪽), 박세리 감독과 찍은 기념사진.

그는 1984년 플로리다에 있는 FIT(Florid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석사과정으로 조직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병리학을 공부하던 아내가 켄터키주 루이빌 주립대학으로 가면서 그도 따라갔다.

그는 켄터키주를 대표하는 골퍼이자 트릭샷 아티스트(관객에게 묘기 샷을 선보이는 골퍼)였던 버디 디믈링과 친해지면서 지역 골프계에 뿌리를 내렸다. 실기 테스트를 거쳐 켄터키 프로골프협회(PGA) 회원이 되고 9홀 골프장이 있는 연습장 헤드프로가 됐다. 루이빌 지역 신문에 최고의 골프 교습가로 소개된 적도 있다.

"백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엔 한국에서 온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한국식 성심성의가 통하더라고요. 당시엔 스윙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지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과감하게 시도했어요. 30분에 30달러를 받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저만 꽉 차곤 했죠."

그와 함께 라운드를 하다 퍼팅 솜씨에 반한 루이빌 시장이 '원 퍼트(one putt)'라는 글자가 들어간 차량번호판을 선물하기도 했다.

아들이 경제학박사가 아닌 골프장 프로가 됐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좋은 평판을 듣는다는 지인들 이야기에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전설적인 미국의 티칭 프로인 하비 페닉은 '골프를 한다면 당신은 나의 친구(And If you Play golf, You're My Friend)'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도 골프를 통해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말 방송을 보고 연락이 온 고(故) 김종필 전 총리와의 라운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자민련 총재 시절이었죠.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하루에 비행기 몇 대가 김포를 뜨고 내리느냐고 묻더니 정확한 숫자를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면서 김포공항이 꽉 차는 날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박학다식하고 유머가 풍부한 분이셨죠. 파3홀만 되면 내기를 하시자고 그랬어요. 하하하." 그는 권노갑(89) 민주평화당 고문과도 가끔 라운드를 한다고 한다. "연세가 믿기지 않게 정정하고 늦게 골프를 시작하셨는데 지금도 늘 열심히 배우려고 하세요." 그는 박지만(61) EG 회장을 형처럼 따른다. "지금도 드라이버로 250m를 치는 장타예요. 박근혜 대통령 시절 누님이 대통령이라서 나를 통하면 다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만사불통'이라고 했죠."

그는 최경주, 박세리부터 최근 임성재, 최혜진까지 골프 잘 치는 선수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역경이나 좌절에 굴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이란 말이 있죠. 실패해도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오르죠. 이런 마음의 맷집이 없다면 100명 안팎이 출전해서 1명만 우승하는 골프에서 성공할 수 없어요." 그는 중계 인생 중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중계 도중 울컥했다고 한다. 그는 2020년 도쿄올림픽 중계를 위해 가스미가세키 골프장 답사를 다녀오는 등 준비하고 있다.

김 위원은 "세계 정상급인 선수들 기량만큼, 우리 골프계의 시스템도 기본부터 다시 다지고 사회인식도 달라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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