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가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첫날 10번 홀 그린에서 퍼팅을 하기 전 공을 바라보고 있다./KLPGA박준석 |
"골프가 좋은 게 아니라 골프를 하는 제가 좋아요. 골프를 통해 많은 걸 이뤘지만 기뻤던 순간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순간이 더 많았어요. 꼴도 보기 싫은 때도 있었죠. 하지만 싫어하는 만큼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던데요. 골프는 저를 계속 도전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박인비(31)는 ‘골프가 왜 좋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9일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1라운드 후 가진 인터뷰에서다.
박인비는 남녀 통틀어 최초로 ‘골든 슬램’(커리어 그랜드 슬램 + 올림픽 금메달)을 달성했지만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할 만큼 골프에 회의를 느꼈던 적이 있다. 올림픽 이후 다시 부상을 겪으면서였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삶과 골프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마음의 갈등을 훌훌 털어버린 박인비는 "올해는 골프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 남기협 씨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박인비는 "그동안 남편과 많은 우승을 이뤘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부모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 이후 한 번 더 나를 업그레이드 해 준 게 남편이다"고 했다. 박인비는 2세 계획에 대해서는 "하루 빨리 갖고 싶지만 아직 30대 초반이니까 현재 일에 조금 더 집중하겠다"고 했다.
동반 라운드를 한 김아림(24)의 장타 능력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당장 LPGA 투어에 와도 돼요. 거리로는 톱3 안에 들 거예요. 저랑 거의 50야드 정도 차이 나던걸요. 제가 본 한국 선수 중 가장 장타인 것 같아요."
이날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친 박인비는 경기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버디도 많이 나왔고, 퍼트 감이나 샷 감도 나쁘지 않았다"며 "첫날이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우승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다음은 박인비와의 일문일답.
Q. 오늘 라운드 소감은.
"버디도 많이 나왔고, 퍼트 감이나 샷 감도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경기를 했다. 후반 1번과 3번 홀이 조금 아쉽다. 1번 홀에서는 짧은 버디 퍼트를 놓쳤고, 3번 홀에서는 티샷이 약간 디보트에 들어가 있어서 파 세이브를 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것 외에도 다 괜찮았다."
Q. 어제 더운 날씨가 싫다고 했는데 어땠나.
"오늘 바람이 불고 구름도 많이 끼어서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 벌었다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거리나 방향 계산하는 게 약간 까다롭긴 했지만 날씨가 훨씬 안 덥게 느껴져서 좋았다."
Q. 퍼트 감은 어땠나.
"그린이 생각보다는 느렸다. 퍼트가 짧은 게 여러 번 나오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생각한 대로 잘 갔고, 퍼트 감도 나쁘지 않았다."
Q. 오라 골프장에서 1년 만에 쳤는데 어땠나.
"샷적인 부분에서는 큰 트러블이 있는 코스는 아니다. 세컨드 샷에서 그린이 어떤 때는 굉장히 단단하고, 어떤 때는 굉장히 부드럽게 느껴진다. 올해는 딱 중간인 것 같다. 저 같은 경우에는 롱아이언을 치다 보니까 런까지 계산해야 해서 앞 핀을 공략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오늘 롱 아이언을 많이 잡았는데 크게 미스를 하지 않았던 게 스코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Q. 오늘 핀을 지나치게 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 거리를 넉넉하게 잡았는데 이상하게 거리가 안 나가더라. 공도 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짧았다. 하지만 짧은 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짧게 떨어지는 게 잘 먹혔다."
박인비가 경기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KLPGA박준석 |
Q. 김아림과 같이 쳤는데 어땠나.
"LPGA 투어에 당장 와도 된다. 거리로는 LPGA에서도 톱3 안에 든다고 본다. 나랑 50야드 차이 나더라. 파5 6번 홀의 경우 사실 2온이 쉽지 않은 곳인데 편안하게 2온 하더라. 내가 본 한국 선수 중 가장 장타자다."
Q. 그렇게 거리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 어떤 걸 느끼나.
"제가 너무 불리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저도 사람이니까. 피칭웨지를 치느냐 5번 아이언을 치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드라이버를 많이 못 보내는 것도 나의 실력이기 때문에 저의 골프스타일이라고 인정하고 가야 할 것같다. 자꾸 드라이버 거리만 생각하면서 내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면 마이너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보완해야 한다."
Q. 이정민 선수는 오늘 그린이 잘 받아준다고 얘기했는데 본인은 어땠나.
"저도 9번 아이언 정도의 샷은 비교적 잘 받아줬다고 생각한다. 전반 나인에서는 롱아이언을 잡는 홀이 많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조금 튄다고 느꼈다. 하지만 쇼트 아이언으로만 가정했을 때는 그린이 단단한 편은 아니었다."
Q. 한국에서 오랜 만에 라운드 하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는 분들 많이 오셔서 응원해 준다. 미국에서는 캐디와 남편, 이렇게만 다닌다. 한국에 오면 사실 정신이 없긴 한데 외롭지 않아서 좋다. 심적으로도 편안하다. 이동에 대한 부담도 없다. 일요일 경기 끝나고 집에 가서 나의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다."
Q. 은퇴 시기를 고려하지 있지는 않나.
"오래 전부터 생각했는데, 은퇴는 언제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올해나 내년에 당장 (은퇴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언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더라. 매년, 매주마다 마음이 바뀐다. 정확하게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냥 골프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두지 않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
Q. 골프가 왜 좋은가.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골프가 좋다기 보다는 골프를 하는 내가 좋다. 골프를 통해 많은 걸 이뤘다.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골프다. 기쁜 순간보다 스트레스를 줬던 순간이 많았다. 꼴도 보기 싫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싫어하는 만큼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더라. 그리고 계속 도전하게 만든다. 끝 없는 도전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Q. 올해 골프로 인해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올해는 특별하게 싫었던 적은 없다. 스트레스 없이 경기를 했다. 2016년이 가장 힘들었다. 그때가 내 커리어 중에서 가장 큰 일을 했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시기였다."
Q. 또래 친구들을 보면 아이를 갖고 생각은 없나. .
"저도 하루 빨리 가정을 갖고 싶다. 그런데 투어가 아이와 함께 하기 힘든 일정이다. 아직 30대 초반이다. 제가 하는 일이 조금 더 집중하고 아이를 갖는 문제는 차후에 생각하겠다. 너무 늦으면 안 되니까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다."
Q. 골프 여제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올해 에비앙에 가서 남편과 페어웨이를 걸으면서 2012년 에비앙 우승 당시를 얘기했다. 그 우승 이후 남편과 많은 우승을 했다. 이전까지는 부모님이 너무 많은 도움을 줬다. 거기서 또 한 번 업그레이드를 해 준 게 남편이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Q. 골프 여제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수식어는 부담스럽고, 그냥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다."
Q. 오늘 잘 쳤다. 우승 느낌이 드나.
"첫 라운드 끝나고 우승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우승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오늘 그렇게 나쁜 라운드를 하지 않았다. 내일 성적이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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