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코스는 내게 전쟁터였다”고 했다. 박인비에게 골프란 그만큼 큰 중압감이었다./KLPGA박준석 |
열정적인 아마추어 골퍼에게 ‘꿈의 직업’은 프로 골퍼가 아닐까 싶다. 실력이 뒤따라줘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긴 하지만 돈도 벌면서 전 세계 유명 골프장을 섭렵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직업이 없을 게다.
‘골프 여왕’ 박인비(30)는 그러나 "코스는 내게 전쟁터였다"며 "코스의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때는 어머니에게 "조그만 포장마차를 해도 이보다 행복할 것 같다. 그만 두고 싶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박인비의 아버지는 그런 딸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코스에서 여러 명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보였다. ‘아비로서 괜한 걸 시켰구나’라고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전 세계 골퍼 중 유일한 ‘골든 슬래머(커리어 그랜드 슬램+올림픽 금메달)’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박인비는 왜 이렇게 얘기했을까. 화려한 명성 뒤에는 어떤 번뇌와 고통이 자리잡고 있었던 걸까.
박인비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간 박인비는 2008년 역대 최연소 나이로 US여자오픈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그 직후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스무 살에 거둔 큰 타이틀이 오히려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박인비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데까지 갔었다"고 했다.
수렁을 빠져 나오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프로 골퍼 출신의 남편 남기협씨의 역할이 컸다. 둘은 사랑을 키우면서 골프의 기본기부터 다시 점검했다. 2012년 2승을 거둔 박인비는 이듬해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2015년에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완성했다.
시련은 행복을 질투한다. 박인비는 2016년 초 허리가 좋지 않더니 손가락 부상까지 겹쳤다. 대회에 나가서는 컷 탈락과 기권이 이어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인터넷 공간에선 "욕심이 과하다" "다른 선수에게 출전권을 양보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심리적 압박이 컸다.
박인비는 그러나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출전을 포기하는 건 비겁하다 생각했다"며 "출전을 결심한 후 40여일 동안 아침 6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연습을 했었다"고 말했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숙명이라지만 박인비에게는 참 얄궃었다. 올림픽 1년 뒤인 2017년 8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또 다시 허리에 부상을 입어 2년 연속 시즌을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나에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생각한 박인비는 골프를 그만둘까도 했다. 이를 둘러싸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갈등도 생겼다.
화려한 영광만큼이나 고뇌도 많았던 박인비는 지난해 비로소 골프의 재미를 느꼈다. 출전 대회 수를 대폭 줄이고, 자신만의 삶을 찾기 시작하면서다.
"다른 해보다 마음이 편하고 체력적으로 덜 힘드니까 골프에 대한 열정도 살아나고,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데요. 일반 사람처럼 지내다 ‘아, 나 골프 선수였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시합에 나갔고요. 제 존재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시간이었어요. 은퇴요? 이제 골프 그만 두겠다는 얘기는 쉽게 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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